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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미원리 오윤환송덕비(米院面 米院里 吳允煥頌德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미원리 오윤환송덕비(米院面 米院里 吳允煥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10. 24. 05:55

미원면 약물내기 공원 비석군에 있는 해주인 오윤환의 송덕비입니다.수산오윤환선생송덕비( 壽山吳允煥先生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좌,우 후면에는 수산선생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번에 약물내기 공원이 새로 단장을 하며 추가로 제작된 비석입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공을 나는 백학처럼 오직 청렴과 정직을 삶의 신조로 삼고 한평생 고고하게 살다가신 마지막 조선선비가 있으니 그는 수산 오윤환 선생님이시다.선생은 해주오씨 시조 오인유공의 26세손이요 증시조 진천현감 오윤성공의 12세 손으로 1929년 1월 13일 청주시 미원면 수산리에서 오형근공과 민남산여사 사이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서 부인 노병일 여사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다.선생은 어려서 부터 문재(文才)가 탁월하여 열살전에 부친께 천자문 동몽선습을 익히고 1945년에 미원보통학교를 졸업한후 논어 주역까지 섭렵하신 한학자이시다.선생은 1952년 부터 미원면사무소에서 잠시 근무하고 충청민보사 기자로 근무하다가 퇴사 후 일평생 고향을 지키며 사회활동에 헌신하였다.

미원중학교 설립때에 육성회장을 역임하고 1973년에 미원고등학교가 설립될 때에는 거금의 사재를 투입하면서 학교설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생은 1981년에 대통령 선거인단에 당선되었고 청주지방검찰청 선도위원에 위촉되었다.민주통일청원군 협의회장으로 위촉되는 등 수많은 사회단체에 참여하여 국익신장과 지역사회 개발에 공헌하였다. 1985년 미원농협조합장에 선출되어 5년간 불철주야 농협발전에 힘썼다.

 

선생은 평생 640쌍의 결혼주례를 섰는데 조합장 재직시에는 주례 답례금이 들어오면 혼주의 출자금으로 납입함으로서 오늘의 시대에 보기드문 선행을 베풀었다.조합장 선거때에는 본인의 출마를 극구 고사하였지만 뜻있는 조합원들이 협찬금을 모아 적극 추대하여 당선되는 전대미문의 미담을 남기었다. 1993년에 제3대 청원문화원장으로 선출되어 8년간 청원군지를 비롯하여 청원지명지 청원사료집등 수많은 도서를 간행하였고 도의교실을 개설하여 천여명의 학생을 배출하여 청소년 도덕성 함양과 향토문화 창달에 크게 공헌함으로서 문화관광부로 부터 우수문화원으로 선정 되기도 하였다.또한 미원농협에 서예반을 개설하여 서예지도와 청소년 선도에 힘썼다.1995년에는 미원면 생수공장 대책위원장에 추대되어 난립하는 생수공장 건립을 적극 저지함으로서 주민의 환경의식을 깨우치고 우리나라 물관리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2013년에는 선생이 써놓은 한시 비문 산문등을 모아 미원문화가족협의회에서 심농시문집(心農詩文集)을 발간하였다. 이렇듯 선생의 공로가 인정되어 1995년에 국민훈장석류장을 받고 청원군민대상 정도대상등 수많은 수상을 하신 분으로 선생의 생애는 일향의 사표요 향당의 등불이라 칭송이 자자하다. 이와같이 선생은 오로지 애향과 나라에 헌신한 선비로서 고매한 인품과 그 덕행을 천추에 길이 전하여 본받게 하고자 미원면민의 뜻을 모아 여기에 작은 돌을 세운다. 202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