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율리 김득신 묘소(栗里 金得臣 墓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율리 김득신 묘소(栗里 金得臣 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5. 1. 9. 11:48

율리 김득신 묘에서 바라보는 율리의 풍경이 평화롭습니다.

 

아버지 김치의 묘와 김득신의 묘 그리고 김득신의 아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증평읍 율리 김 치 신도비(曾坪邑 栗里 金 緻 神道碑)

 

증평읍 율리 김 치 신도비(曾坪邑 栗里 金 緻 神道碑)

증평읍 율리에 있는 안동인 김 치의 신도비이다. 김 치는 1577(선조 10)∼1625(인조 3).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심곡(深谷). 석(錫)의 증손으로,

king6113.tistory.com

 

 

김치의 묘비입니다.

안흥군(安興君) 남봉(南峰) 김치(金緻 : 1577∼1625)의 묘갈은 현종 15년(1674) 증평읍 율리(曾坪邑 栗里)에 있는 그의 묘소 앞에 세웠는데,비문(碑文)은 아들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이 짓고 글씨는 손자사위인 최선(崔渲)이 썼다.
김치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호는 남봉(南峯)·심곡(深谷), 문과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대사간, 병조참의를 지내다가 파직됐다. 인조반정 후에 대북(大北)으로 몰려 귀양을 갔다가 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그의 묘소는 증평읍 율리에 있다.

 

김치의 묘를 전부 담아 보았습니다.

문인석과 망주석 그리고 동자석이 자리하고 있는 김치의 묘입니다.

 

백곡 김득신의 묘입니다.

안풍군(安豊君)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 1604∼1684)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김치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참봉을 지내고 문과에 급제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안풍군(安豊君)에 습봉(襲封)되었고, 시인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의 묘갈(墓碣)은 숙종(肅宗) 14년(1688)증평읍 율리에 있는 그의 묘소 앞에 세웠는데,비문은 유재(游齋) 이현석(李玄錫)이 짓고 글씨는 9촌 조카인 김봉지(金鳳至)가 썼다.

 

김득신의 신,구 묘지석입니다.

 

괴산읍 능촌리 취묵당 현판(槐山邑 陵村里 醉默堂 懸板)

 

괴산읍 능촌리 취묵당 현판(槐山邑 陵村里 醉默堂 懸板)

괴산군 능촌리에 있는 김득신이 지은 취묵당에 걸려있는 각종 현판들이다. 전국문화유적총람에 보면 취묵당은 (醉默堂)은 <<괴산군읍지>>에 취묵당재군동십리(醉默堂在郡東十里)이라 하였듯이

king6113.tistory.com

 

김득신 묘비와 동자석(金得臣 墓碑와 童子石)

 

김득신 묘비와 동자석(金得臣 墓碑와 童子石)

증평읍 율리에 있는 김득신의 묘에 있는 묘비와 동자석과 망주석이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king6113.tistory.com

 

백곡 김득신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비와 망주석 그리고 동자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동자석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화은군은 김득신의 장자입니다.

이름은 김천주입니다. 자(字)는 여중(汝重)이며  백곡 안풍군 득신(柏谷. 安豊君. 諱 得臣)의 장자입니다. 38세로 사망하였으며 사후 증조부 김시민의 공훈으로 인하여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또한 화은군(花恩君)에 봉해졌습니다.비석은 근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습니다.

 

 

김치의 묘에서 바라다 본 율리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