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부여박물관
- 공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각연사
- 충주박물관
- 사인암
- 화양구곡
- 한독의약박물관
- 법주사
- 밀양박씨
- 문경새재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효자각
- 선돌
- 티스토리챌린지
- 상당산성
- 곡산연씨
- 공산성 선정비
- 문의문화재단지
- 부도
- 국립청주박물관
- 청주박물관
- 오블완
- 보성오씨
- 충북의 문화재
- 단지주혈
- 사과과수원
- 청풍문화재단지
- 경주김씨
- 효자문
- Today
- Total
목록2021/02 (2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차의 창문을 열고 시골길을 달린다.따스한 햇살이 봄의 내음을 전해주는것 같다.문경관음리 석불입상이란 팻말이 참 정겹다 도로 한켠으로 차를 세우고 맑은 시냇물을 건너 햇살아래 한가로운 사과밭을 지나 석불입상을 찾는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3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있다. 과숭원 한켠 얕은 언덕위에 전각안에 계신다.전각이 조금은 비좁아 보일정도로 석불은 크기가 크다.문경읍 관음리 계립령으로 가는 길목의 밭 가운데 서있는 이 석불은 높이 3.33m 의 화강석으로 제작되어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두상이 절단된 것을 시멘트로 접착시켰고 코끝도 시멘트로 보수를 했다. 안면은 마멸이 심하고 육계도 명확하지 않다. 통견의 납의가 무릎부에서 갈라졌고 군의가 처졌다.오른손은 손 바닥을 안으로하여 늘어뜨렸고 왼손은 ..

문경읍 갈평리 용흥초등학교입구에 서있는 면장 김병채의 불망비입니다.면장김병채불망비(面長金炳采不忘碑)라고 음기되어 있습니다.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166-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풍천임씨감역공파사당(豊川任氏監役公派祠堂)인 주왕사(駐王祠)입니다. 근간에 지어진 사당으로 적벽돌로 담을 둘렀으며 사당과 함께 관리동을 갖추고 있습니다.동네의 이름이 주왕리입니다.주왕(駐王)이란 임금의 말이 머무렀던 곳이라는 뜻일게다 풍천임씨의 시조 임 온(任溫)은 고려 때 경상도 추동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6세손 임 주(任澍)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풍천은 황해남도 송화군의 옛 지명이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은율(殷栗)을 합병하여 풍율군(豊栗郡)이라 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69년(예종 1) 왕비..

문경시의 깊은 산골짜기에 서 있는 규모가 작고 아담한 3층 석탑이다. 이 절터의 유래나 규모는 알 수 없으며, 발견 당시 3층 몸돌이 근처에 새로 지은 제실(帝室)의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는 등 탑의 각 부분이 흩어져 있었다. 1960년 9월에 전부 수습하여 복원하였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만을 두어 특이한 형태이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있다. 기단은 남북면에만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두었고, 동서면에는 남북면의 사잇돌을 밀어 넣어 맞추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구성하였으며,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의 모양을 본떠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오르고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머리장식으로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있는데, 노..

따스한 햇볕아래 이제는 완연한 봄인가 보다 실눈 뜨고서 한걸음 내딛고 싶은 사과과수원 한모퉁이 나는 조금 더 기다리련다 관음리 석조반가사유상 가만히 턱 괴고 하늘바라본다. 20200224문경관음리

서원구 남이면 갈원리에 위치하고 있는 갈원초등학교 입구에 있는 흥학송공비이다. 갈원초등학교를 건립할때 토지를 희사하고 금전적인 도움으로 갈원초등학교를 건립하는데 지대한 공로가 있는 박승근(朴勝根),오동식(吳東植),오영만(吳永滿)등의 공로를 생각하며 갈원리 주민일동으로 1968년에 세웠다 왼쪽부터 고박승근흥학송공비(故朴勝根興學頌功碑),오동식흥학송공비(吳東植興學頌功碑),고오영만흥학송공비(故吳永滿興學頌功碑)라고 음각되여 있다.일제강점기의 어려움속에서도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하여 학교부지를 희사하고 또한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힘쓰며 갈원초등학교를 개교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개교유공자공덕비라는 안내판을 갈원초교학교장 이름으로 세워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