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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2 (2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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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면 저산2리 마을회관에 자리하고 있는 청주인 한명보의 송덕비입니다.2017년 9월 저산리 주민일동이 전재산을 마을발전을 위해 희사한 한명보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을 설며 공을 실현하고 덕을 기리는 것은 충 효 예와 의이다. 사회에는 공익과 봉사에 인색한데 그 공덕이 이 지역에 널리 미친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한명보이시다. 공의 본관은 청주한씨로 대정원년(1912년)12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백현리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불행하게 평생을 살다가 별세하였다. 공은 살면서 성실하고 덕을 베푸는 것을 일상시 하셨고 지역과 주민들에게 이바지 하고자 자신의 전재산을 마을에 희사하고 좋은일에 사용하라 하시면서 공은 후손이 미천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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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이란 불교에서 인간의 속세적(俗世的)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근본적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인도사상(印度思想)·불교는 이것을 종교와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생각하였다. 즉 범부는 탐욕·분노·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데 특징이 있다. 결국 번뇌의 속박을 떠나 삼계(三界:欲界·色界·無色界)를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無礙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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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언제던가? 철없이 술을 절제없이 많이도 마시던 날. 아내와 약속을 하고 당분간 금주를 하고 있던 때로 기억이 난다. 고향에 어머님을 뵈러가면 집 들어가기전 마트에 들려 소주 한병사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 받고 반주로 한잔씩 하곤 했다. 때가 지났어도 꼭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는다고 전화를 드리곤 했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차려주는 밥상을 맛나게 맛있다고 먹어주던 막내아들이 참 좋으셨나 보다. 언제나 밥먹는 내 앞을 떠나시지 않으셨다. 그 날도 아내와 고향집에 들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아 밥을 먹는데 어째 오늘은 술을 안사왔나 보다 하시더니 냉장고에서 소주한병을 꺼내 주신다. 아마 아들이 온다니 아들 좋아하는 소주를 사다 놓으셨나 보다. 아내가 옆에 있다가 "민호아빠 당분간 ..
함양 학사루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문창후 최치원 선생이 이 지방에 태수로 재직시 자주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읊은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학사루라 불렀다고 전하므로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본다. 학사루 서쪽에 객사가 있었고, 지방관리가 정무를 보면서 피로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학사루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쓰며 심신을 달랬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리학자로서 영남학파의 종조였던 점필재 김종직이 이 곳의 군수로 부임하여 학사루에 걸린 유자광의 시판을 철거토록 하여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 고조되어 조선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 곳이다. 왜구의 침입으로 사근산성이 함락될 때 학사루가 소실되었으며 조선 숙종 18년 (1692)에 군수 정무(鄭務)가 중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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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으로, 이곳에는 순조의 태가 안치되어 있었다. 항아리에 태를 넣어두었던 것을,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왕의 태실로서 여러 석물을 갖추고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형태는 8각을 기본으로 한 부도(승려의 사리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8각의 돌난간이 둘러 놓았다. 앞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을 갖춘 태실비가 있는데, 앞면에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새겨 놓았다. 조선 정조 11년(1787)에 만든 것으로, 이 때부터 태실이 있는 산을 태봉산이라 하고 보은현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한다. 태항아리는 1927년 일제가 창경궁으로 옮겨가고 현재는 비와 석조물만 남아있다. 8각형의 돌난간은 1982년 해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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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입구를 들어서면 계단 왼쪽으로 서있는 이승만박사의 추모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우남이승만박사추모비(雩南李承晩博士追慕碑)라고 적혀있으며 추모비는 1965년 이승만박사 서거일에 맞추어 대한반공청년회에서 세웠습니다. 이승만(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은 조선·대한제국·일제 강점기의 개화파·독립운동가·언론인·정치인·교육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서훈되었다. 본관은 전주이고, 초명은 승룡(承龍), 호는 우남(雩南)이다. 황해도 평산군에서 양녕대군의 방계 16대손으로 태어났다. 대한제국 시절 《독립신문》과 《협성회회보》 주필, 독립협회 활동 등 계몽운동을 하였고, 왕정 폐지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