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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7 (6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오장환시인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오장환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이육사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 1937년에 첫 번째 시집 『성벽』, 1939년에 두 번째 시집 『헌사』를 내고 난 뒤에는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
내북면 동산리 개을가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영조때 청산현감을 지낸 이윤신의 청덕선정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윤신은 영조4년(1728년)에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제수되였습니다.이 청덕선정비는 그 후인 1729-3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동산리는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 주성면(酒城面) 관할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이윤신은 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 초기(楚奇)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성(..
[오장환 "편지"] 누나야, 편지를 쓴다 뜨락에 살구나무 올라갔더니 웃수머리 둥구나무 조그만하게 보였다 누나가 타고 간 붉은 가마는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누나야, 노랗게 익은 살구도 따먹지 않고 한나절 그리워했다. 오장환의 시 "편지"에 나오는 웃수머리 동구나무입니다. 오장환 생가에서 바라보면 동구나무가 보입니다. 오장환은 시집간 누이를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둥구나무를 바라보며 시를 지었을 것입니다.
가덕면 청용리 석탑을 보고 나오는 길에 청용3리를 찾아 들었습니다. 청용3리 쇠골마을에는 정조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는 어서각이 경로당 뒷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812년(순조12)에 건립되였다. 정조의 어서를 보관하고 있다. 임금이 직접 글로서 하사한 것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청룡리 쇠골 마을에 있는 어서각(御書閣)은 조선 순조 12년(1812)에 보은현감 고령인(高靈人) 신병권(申秉權, 1737~1816)이 백세(百歲)의 수직(壽職)으로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管)에 오른 그의 아버지인 신의청(申義淸, 1692~1792)에게 내린 정조의 어서(御書)를 보관한 각이다. 지금의 어서각은 1925년에 중건하고 1965년과 1987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