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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7 (6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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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미륵석불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입니다. 언제던가 석등에 화창을 통해 미륵불 부처님과의 눈맞춤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미륵불님은 기약없는 하안거(?)에 들어가시고 언제나 그 뽀얀얼굴 보여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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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괴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갈골 윗여생이과 방성골(方城골)을 병합(倂合)하여 방성리(方城里)라 하여 문광면(文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이곳 웃여생이은 청천면 아랫여생이에 인접하여 다같이 여생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이 다를 뿐이다. 갈 골(盧洞) : 방성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 청천면 대전리 서쪽에는 청천면 토성마을이 인접하고 있고 구 괴산읍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방성리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옛날에 갈대밭이 있었던 마을이라 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웃여생이(웃如思旺里) : 방성골마을에서 남서쪽에 잇는 마을로 전에는 청천면 여사왕리와 한 마을이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방성리에 병합(倂合)되었다. 방성골(方城골) : 일명 원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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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필헌 신후(1708∼1779)가 지은 집으로 안채, 곳간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과 부엌을 두었다. 안채 앞쪽에는 중문이 있는 곳간채를 두었고 사랑채는 앞면 6칸·옆면 2칸 크기로 팔작지붕이며 방과 부엌을 두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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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금 늦은 시간 바람도 더위를 먹은 때 푸른 논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굴산사지 당간지주 사진 한장 박아 마음속에 그리움 붙여 엽서로 보냅니다. 2021.07.23 굴산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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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운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