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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9 (5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회인면 쌍암2리 능암에 있는 동래정씨의 재실인 낙진각입니다. 마을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방문하는 날은 대문이 잠겨있어 안을 살펴볼수가 없었습니다.기와지붕이며 세멘블럭담으로 둘렀습니다. 낙진각樂眞閣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쌍암리는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내북면, 서쪽은 신문리, 남쪽은 고석리, 북쪽은 내북면과 청원군에 접해있다. 본래 회인군 동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개동, 능암리, 계암리를 병합하여 능암과 계암의 이름에서 따라 "쌍암리"라 하고 보은군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능암 : 쌍암리의 중심마을 고려때 웅암사란 절이 있던 곳으로 절이 없어지고 마을이 생겼다하여 웅자에서 아래 네점을 버리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동재정씨 집성촌이다. 지바우 : 능암 서남쪽에 있는 마을 계목와 큰 바위가 있다. 초갯-골 : 능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풀이 무성하였다 한다. 장수굴 보은군 회인면 능암리 마을 뒷산에 "장수굴"이라 부르는 굴이 있다. 조선 선조때의 이야기다. 이 굴에 장수라고 자칭하..
부처님 뒷모습을 뵈니 커다란 자루 메신듯 보입니다. 세상사 인간들의 바램과 고통을 어깨 가득 둘러메고 길을 나서시는 듯 보입니다. 무거운 짐 지고 어디로 나서실까? 2022.09.15진천향토자료박물관 월성리석불
미원면 어암리에 있는 윤사석의 추모비입니다. 어암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이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池旺里, 小岩里, 漁尾里와 芳旨里, 印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漁尾와 소암의 이름을 따서 어암리라 하였다. 1982년 1월 행정동리분구로 어미, 지왕, 쇠바우를 어암1리로 인봉, 방마루를 어암 2리로 분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윤사석은 조선 전기의 선비이다. 성종 때 사헌부집의를 지냈으나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미원으로 내려와 옥화대 위에 만경정(萬景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미원면 옥화리 윤사석유허비,추모비(米院面 玉花里 尹師晳遺墟碑,追慕碑) (tistory.com) 미원면 옥화리 윤사석유허비,추모비(米院面 玉花里 尹師晳遺墟碑,追慕..
공주 공산성 안내사무실 뒷쪽 공터에 자리하고 있는 애국지사오동진선생의 추모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애국지사오동진선생추모비라고 적혀있습니다. 오동진선생은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오동진(독립운동가) - 나무위키 (namu.wiki) 오동진(독립운동가) - 나무위키 나는 세계평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독립군 사령관이 되었다. namu.wiki
오강표(吳剛杓)는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순국지사 입니다.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아버지는 오치국(吳治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았는데, 가학으로 배움의 기초를 세우고 20살 무렵에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임헌회의 권고로 간재 전우(田愚)에게 학문을 배웠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격분하여 을사오적의 단죄를 주장한 상소문을 써서 관찰사에게 조정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 후 아편을 구입하여 공주향교의 명륜당에서 자결을 시도했으나, 청나라 아편 장사가 물건을 속이고 가짜를 판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명강산에 있다가 합방조약의 사실을 전해 듣고 경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