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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9 (5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떠났어도 생각나는 사람은 떠난 게 아닙니다. 항상 내마음속에서 그리움의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까아만 밤에 어두운 베란다 구석에 섬찟 부는 바람처럼 불현듯 내 가슴 후벼파는 아픔과 두려움 동반된 그리움 입니다 잊힌듯 아스라한 추억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 나타내며 내 두눈에 각인되는 떨쳐낼수 없는 나의 기인 그림자인 듯 합니다. 나의 마음 한구석 기다림의 언덕에서 누군가를 기다리 듯 흔들림이 사치인 듯 미동조차 없는 그리움. 그렇게 그렇게 떠났어도 생각나는 사람은 떠난 게 아닙니다.
충청북도청 남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공공시설로 건설되었다. 구 충북산업장려관은 당초 청주역전 좌측의 본전통에 지으려고 하였으나 그 곳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출장소 건축부지라서 이곳 도청 신축부지에 건립하게 되었다. 1936년 12월 23일에 건립되었는데 총공사비 20,800여원을 투입하여 대구용강조(大邱龍岡組)에 의해 시공되었다. 1957년 2월 14일 충청북도 상공장려관으로 개관하여 도내 상공인들의 홍보 및 전시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당시에는 상공업뿐만 아니라 충북예총 창단대회 등 문화활동의 장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1층은 충북 경찰청 식당, 2층은 충청북도 지방경찰청과 충북도청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구 충북산업장려관은 ㄴ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
공주 공산성란내 안내사무실 뒷쪽에 자리하고 있는 관류당 노숙의 의적비입니다. 노숙은 조선시대 용양위부호군를 역임한 무신입니다.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 아버지는 노응환(盧應晥)이다.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가 공주에 피난내려오자 식량·군기 등을 제공하여 공을 세웠다. 난을 평정한 뒤 공신책봉을 극력 사양하고 단지 민간의 진전세(陳田稅)를 경감하여줄 것을 청하고 귀향하여 농사로 업을 삼았다.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제수받고 후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추증받았으며, 거주동리는 조왕동(助王洞)으로 명명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노숙(盧璹))]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석탑. 창룡사는 충주시 직동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선각왕사 혜근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 서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한 조선 후기 기록에 창룡사가 전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70년경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창룡사 등을 헐어 불타 없어진 충주 관아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1984년 충주 관아 건물을 중수할 때 명문 기와를 통하여 확인되기도 했다. 창룡사 다층 청석탑은 앞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창룡사..
이원면은 본래 신라초에는 소리산현(所利山縣)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16년(757년) 이산현이라 고쳐 부르고 관성군(管城郡) 소속케 하였다.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경상도 경산부(성주)에 소속 시켰다가 충선왕 5년(1313년) 옥주(沃州)에 소속 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 지방행정제도 일제 개편 때 이산현(利山縣)이 폐현되고, 이남면(利南面)과 이내면(利內面)으로 분할되었다.1739년에 발행한 여지도서에는 이남면을 평산리를 비롯한 9개리 619호에서 15세이상 2,687명이 살았으며, 이내면은 현리를 비롯한 8개리에 455호에서 15세이상 1,910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산현의 안쪽이 되므로 이내면이라 하여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0년 일제강..
충주시민들에게는 창룡사라는 이름보다는 남산절이라고 더 불리우는 사찰입니다. 범바위로 불리던 호암동에서 고든골(직동)로 들어서면 만날수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숨쉬는 곳입니다. 남산절 올라가는 계곡에 가재가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위를 뒤집기만 해도 나오는 가재잡는 재미에 많이도 찾은 곳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법주사의 말사. 남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靑石塔) 등의 유물로 보아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절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작성된 「중수기」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