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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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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지사(志士). 본관은 영월(寧越).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후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였다. 단종이 승하한 이튿날 옥가(獄街)를 오가며 통곡하고, 관을 마련하여 아전과 백성들을 모아 영월의 북쪽 5리쯤 되는 동을지(冬乙旨)에 장사지냈다. 1585년(선조 18)에 종손인 정병(正兵) 엄한례(嚴漢禮)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노산군의 묘역을 수호(守護)하게 하였고,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렸다.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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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현효자비(張井鉉孝慈碑)는 흉년이 들어 주민들이 굶주릴 때 경암 장정현(敬菴 張井鉉)이 사재를 털어 굶주린 주민을 도와서 이에 감격한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이 비는 1950년 2월에 세운비(비신 90×39×15㎝)로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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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며, 아버지는 제천 현감과 청풍 군수를 역임한 김광찬(金光燦)이다. 김수항(金壽恒)이 동생이다.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1652년(효종 3)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그 뒤 각사(各司)의 정(正)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석성 현감과 평강 현감을 지냈다. 1670년(현종 11) 곡운(谷雲)[현 강원도 화천군 화북면 영당동]에 복거(卜居)할 땅을 마련하고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었다가 1675년(숙종 1) 성천 부사로 있던 중 동생 김수항이 유배되자 농수정사로 돌아갔다. 그 뒤 회양 부사와 청풍 부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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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길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을 꿇었던 자리가 녹으면서 잉어가 뛰어나와 구해드렸다. 또한, 겨울에 산신령(호랑이)의 인도로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홍시를 구해드렸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도 약과 음식을 손수 마련하여 드렸으며 더러운 빨래도 직접 하였다. 하늘에 어머니의 쾌유를 빌면서 때때로 손가락의 피를 내어 어머니의 병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