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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2 (3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연풍면 행촌리 공적비군 중 하나인 일제강점기 시절의 삼풍구장을 지낸 이재관의 불망비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구장이재관시혜불망비(區長李載寬施惠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조성시기는 일본연호로 대정14년인 1925년 을축(乙丑)년 이다. 삼풍리 주민들에 의하여 조성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구장(區長)이라 함은 지금의 농촌의 이장이나 도시의 통장을 이르는 행정구역의 최말단의 직책으로 구장이 하는 일은 지금의 통장이 하는일과 비슷했다.
연풍면 행촌리 연풍향교옆에 있는 조선말 연풍군수를 지낸 안익환의 불망비이다. 비석에는 군수안후익환영세불망비(郡守安侯翊煥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조성시기는 1898년 무술(戊戌)년 3월에 조성하였다. 안익환은 조선 고종34년 갑신(1897년)년에 연풍군수로 임명이 되였다.비석의 조성은 임기를 끝내고 난후 조성된것으로 추측이 된다. 승정원 일기 고종34년 4월25일에 안익환을 연풍군수로 임명함이 나타난다. ...任高敞郡守鄭崙永, 任舒川郡守李參應, 任延安郡守徐相鶴, 任延豐郡守安翊煥, 任永同郡守兪致眞, 任沃溝郡守趙萬熙, 任振威郡守金思弼, ... 1895년(고종 32)에 연풍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에 괴산군에 병합되면서 폐군되었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사리면의 신혜원과 장풍면의 ..
연풍면 행촌리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면장을 지낸 조병준의 선정비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면장조병준애민선정비(面長趙秉俊愛民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이 깨여진 것을 접합하여 놓았다. 비석의 조성시기는 계유(癸酉)년으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세워졌습니다. 조병준은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에 1914년 괴산군 연풍면장, 1935년 의원면 면장을 지낸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또 조선총독부시정 25주년 기념 표창자 명단에도 올라 있습니다.
행촌리 비석군중에 있는 연풍현감을 지낸 이성항의 영세불망비이다. 비석에는 현감이공성항청덕애민선정영세불망비(縣監李公性恒淸德愛民善政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조성시기는 병신(丙申)년인 1656년이다. 비석의 모양이 특이하여 눈에 띱니다. 비석의 나이가 370년이 넘었습니다. 이성항은 [1603년(선조 36)∼1660년(현종 1):58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장령(掌令)·사간원 사간(司諫)이다. 자(字)는 성구(聖久)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충청도 당진(唐津) 출신으로서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이광후(李光後)이고, 어머니 연성김씨(蓮城金氏)는 김취경(金就鏡)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이제(李禔)의 8대손이고, 병조 판서황정욱(黃廷彧)..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 연풍향교옆에 자리하고 있는 청주인 애국의사 경석조선생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애국의사경석조공공적비愛國義士慶錫祚公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경석조는 1881년 6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연풍면(延豊面) 유하리(柳下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혜춘(惠春)이다.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 구금되었다. 광복회는 대구에서 1915년 7월 결성된 이후 그해 12월 만주 지린(吉林)에서도 우재룡 ・ 손일민 ・ 주진수 ・ 이홍 등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1916년 서울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그 후 총사령 박상진이 만주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체포되어 조직이 크게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노백린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