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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박물관 구경하기/진주박물관(晋州博物館) (5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무인년(戊寅年)4월에 성내토병건(城內土兵建)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병사 ***진휼토졸영세불망비(兵使 ***賑恤土卒永世不忘碑)하고 적혀있습니다.무인년이면 1758,1818,1878년으로 다시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해운판관(海運判官)으로 진주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영조39년(1739년)에 김상신(金相紳)의 이름을 볼수 있다 김싱신은 이년후인 1741년에는 진주목사로 제수되어 진주와 인연을 맺게된다. 이것은 개인적인 추측임을 밝힌다.
승정원일기 2905책 (탈초본 134책) 고종 19년 10월 7일 경신 47/58 기사 1882년 光緖(淸/德宗) 8년 ·洪在倫·許璉爲五衛將, 方泰準爲景福將, 宣昌魯爲左捕從, 李章烈爲忠淸兵使, 李熙忠爲慶尙左兵使, 白南益爲慶尙右兵使, 金東奭爲廣州中軍, 吳有善爲惠山僉使, 金仁鎬爲全州營將, 守判中樞加設單沈履澤, 副護軍趙忠熙, 副司果鎭[兪]鎭沃·朴齊斌·徐誼淳·洪學周·林永相·尹榮植·朴齊臣·王俶說已上竝單付, 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單李元會, 黃海道兵馬節度使單鄭雲翼。 비석의 전면에는 병상국백공남익영세불망비(兵相國白公南益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다. 1882년 10월 경상우병사에 제수돼 진주에 왔으며, 1884년 4월까지 재임했다. 재임시 선정을 베푼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경상우도 암행어사 이헌영이 1..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계형(季亨). 할아버지는 어영대장(御營大將) 이세선(李世選)이다. 무인 가문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봉산군수·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를 거쳐 1733년(영조 9) 함경남병사(咸鏡南兵使)에 발탁되었다. 그 해에 공납(貢納)을 마구 거두어 들인 것으로 말미암아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전임자의 소행으로 밝혀져 무마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장살된 영교(營校) 배수현(裵守賢)의 원수를 갚으려는 아내 자근례(者斤禮)의 습격을 받아 왼쪽 둔부에 상처를 입었다. 변방의 장수가 일개 아녀자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켜 엄하게 처벌하자는 논의가 분분하였으나 파직에 그쳤다. 무인으로서의 뛰어난 재질과 병조판서 박문수(朴文秀) 등의 천거에 힘입어 곧 관직에..
진주성 비림에 자리하고 있다.비석의 전면이 박리되어 누구의 선정비인지는 알수가 없다,기해년(己亥年)10월에 향중립(鄕中立)이라 하여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