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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 (8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의림사지는 1989년 충주 대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명문이 새겨진 청동반자가 출토되면서 사명이 확인되었다. 의림사는 청동반자에 새겨진 “~禪義林寺~大定三十年~” 등의 명문으로 볼 때 1190년(고려 명종 20)경 선종계열의 사찰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헌 기록에서는 사찰의 창건이나 폐사와 관련된 기록을 찾을 수 없지만 大鑑國師 坦然(1070~1159)의 「斷俗寺大鑑 國師碑」에서 사명이 확인된다. 이 비문에는 탄연이 1104 년(고려 숙종 9)에 대선승과에 합격하여 왕명에 의해 의림사에 주석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청동 반자의 명문과 비문을 통해서 볼 때 의림사는 12세기 초 에서 12세기 말까지 사세가 이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해 조선시대 문헌에 서..
2002년 원주원씨충주종친회에서 대소원면 완오리 원주원씨충주종중묘지의 입구에 세운 강릉인 효절부 김용근여사의 추모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효절부강릉김용근여사추모비(孝節婦江陵金龍根女史追慕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김여사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사의 성은 강릉김씨이며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446번지에서 아버지 김노경씨와 어머니 유씨의 4녀중 막내딸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천성에 효심이 지극한 딸로 방년에 충주시 금가면 매화리 하시부락에 거주하는 원주원씨시중공파계 음성공후 사직공파 26세손 용팔과 결혼하여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부군 잘 섬기며 아들형제와 딸하나를 출산하여 다복한 가정생활을 하던 중 아...슬프도다 부군이 우연히 병을 얻어 10여년간 ..
이시희와 이시걸은 아버지의 중환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겨울철이라 못이 얼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형제가 얼음 위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잉어가 솟아나왔다. 어느 땐가 약을 구하기 위해 형제가 밤길을 나서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 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이시희와 이시걸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했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할 때는 3년간이나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을 얻자 대소변을 맛보며 간호를 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죽을 먹으며 시묘를 하는데, 형제간에 서로 묘소를 지키며 효를 다했다. 1722년(경종 2) 정려되었으며, 1756년(영조32) 형 이시희는 통정대부승정원 우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아우 이시..
신니면 원평리 미륵불 앞에 있는 석등대석입니다. 석재의 조합으로 보아 하나의 석물이 아닌 여러 석물이 조합되어 있는 느낌입니다.기단부와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석물에는 앙련과 복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제단(祭壇)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성리 능골 강장자의 집터입구에 거북바위가 하나있다. 이 거북바위의 머리는 충주.주덕간 도로 건너편인 노계마을쪽을 향하고 있고 꽁무니쪽은 강장자집터를 향하고 있다. 이 거북바위가 노계마을쪽의 재물을 먹고 강장자 집터를 향하여 변을 보므로 노계는 못살게 되고 강장자는 부자가 되였다고 한다. 거북바위에 전하는 전설은 가까운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평강채씨거북돌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거북이는 장수와 부의 상징으로 민초들의 바램과 더불어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그래서 노계마을 사람들과 강장자마을 사람들이 서로 거북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며 부자가 되기를 빌었다고 한다. 거북바위는 지금은 마을표지석 옆으로 옮겨져 있다. 원래 거북바위는 장자동터 큰 느티나무 옆에 있었다고 한다.그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