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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92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괴강다리를 건너며 충주방향으로 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날수 있습니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옆에 일종의 체험장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괴산농업박물관옆에 관람인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여 놓았습니다. 전형적인 농촌의 한 집안을 재현하여 지금은 주위에서 사라져 글이나 말로만 전해듣는 농가에서 사용하던 물건이나 도시생활에서 체험할수 없는 많은 것들을 전시하여 놓았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지금은 주위에서 사라지는 윷놀이 또는 제기차기등을 할수 있도록 일종의 체험장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아니면 청소년들의 체험장으로 아주 적합한것 같습니다. 체험장과 더불어 주위에 있는 효자문 그리고 동몽선습비와 애한정을 묶어 하나의 이야기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상진의 효자각은 애한정 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괴산농업박물관과 같이 있어서 주차등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농업박물관을 둘러보고 주위에 있는 효자각과 애한정등을 둘러보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박상진(朴商鎭)의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박세무(朴世茂)의 11대손이며 애한당(愛閒堂) 박지겸(朴知謙)의 9대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품팔이로 근근이 생활하면서도 부모를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도 계속 술을 올렸다. 뒤에 아버지가 늙어 병으로 눕게 되었을 때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 지성으로 간병하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회생시켰다.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피눈물로 3년 상을 마쳤으며, 그의 나이 8..
수옥폭포 우측절벽을 보면 수옥정(漱玉亭) 숭정후이 신묘 동강 조자직위작정자 질 유수서(崇禎後二 申卯 東岡 趙子直爲作亭者 嫉 裕壽書)라고 해서체로 뚜렷하게 음각되여있다. 이를 풀어보면 조선 1711년(숙종37년) 동강 조자직이 정자를 지었다는 것이다. 조자직(趙子直)(1640~1719)은 본명는 조상우(趙相遇)이며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벼슬은 우의정에 올랐다. 조자직이 그 당시 정자를 지였으나 이후 정자는 없어지고 또한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수옥정은 1960년대 지방독지가와 군당국에서 아담한 팔각정을 세우고 2010년 12월 정자를 보수하고 수옥정 현판은 전 국회의원중산 안동준이 썼다. 승정원일기 2107책 (탈초본 109책) 순조 18년 12월 27일 경인 37/41 기사 1818년 ..
청천면 창리에 위치한 장기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돌입니다.지금도 이 바위가 자리한 곳의 지명은 장기바위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바위위에는 장기를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장기판 비슷한 모양이 가로세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호울타리도 잘 정리되어 있었고 안내표지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은 관리가 부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차량통행이 빈번한 이차선 도로가에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난 듯 합니다. 예전부터 바위에 손상을 가하거나 하면 화를 입는다고 전해지며 마을사람들은 바위를 신성시 여기며 마을의 수호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연풍면 행촌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방 안용우의 시혜비이다.행촌리 연풍향교옆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들은 연풍면 각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군데로 모아 놓은곳이다. 이 고장을 거쳐간 군수나 현감 또는 면장등의 비석이 같이 함께 하고 있다. 비석에는 이방안용우시혜노령영세불망비(吏房安用禹施惠奴令永世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건립시기는 기해(己亥)3월이다. 비의 상태등을 보아 비석에 표기된 기해년은 1899년정도로 추정된다. 비석에 음각되여 있는 노령(奴令)이라 함은 지방관아의 관노와 사령을 칭하는 말로 이방 안용우가 관노와 사령등에게 은혜를 준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추측된다. 비석에서 칭하는 이방은 비석의 내용으로 보아 중앙관청의 이방을 칭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방(吏房)은 조선시대 승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