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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50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경주인 판도판서 장유(將有)의 14세손 복찬을 비롯하여 4대의 일곱 분의 위패를 봉안한 제당이다. 보은읍 종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리상태가 부실하다. 양철지붕으로 하였으며 주위는 막돌을 이용한 흙담을 둘렀다.입구에 세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경주인 김극태의 처인 의령남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5년(1867년)에 나라에서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여 그가 살던집 대문에 편액하였던 정문이다. 정려건축은 마을입구에 독립된 목조정각으로 세워지는 경우와 가옥의 대문간을 정려로 하는 2가지 유형이 있는데 의령남씨 효부문과 같이 가옥의 대문을 정문으로 하는 경우는 충북지역에서는 흔치않는 유례이다. 현재는 집은 없어지고 편액이 걸린 대문만 보존되고 있다. 대문은 정면 3칸 측면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중앙의 1칸은 솟을대문이고 양측의 1칸씩은 행랑으로 온돌방을 시설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구조는 낮은 시맨트 기단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위에 방형의 기둥울 세웠다. 현재 "효부사인김극태처의령남씨지문(孝婦士人金極泰妻宜寜南氏之門)이란 명정편액이 솟을대문..
준비성이 없음을 탓해야 할꺼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두번 걸음 없으련만 종곡리를 다시 찾았다. 먼젓번 걸음에는 시간에 쫓기느라 제대로 둘러보질 못하고 갔으니 말이다.종곡리를 찾아들어가는 길 좌우로 장승이 한창이다. 생태및 염색등을 체험할수 있는 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경주김씨 소유의 정문이다. 종곡리를 접어들며 우측으로 눈길을 주면 자리하고있다. 김기서 효자문은 정묘년(1867년 고종4년)에 정려되였으며 4년후에 동몽교관과 조봉대부로 증직되였다. 종곡리는 고려시대 판도판서를 지낸 김장유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후 약 600여 년 간 대대손손 이어온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조선조 중종 때 조광조와 더불어 개혁정치를 이끌었던 충암 김정선생의 고향이며, 대유학자인 대곡 성운선생이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
법수리 마을안쪽에 자리한 탑제당이다. 마을주민들의 휴식처인 나무아래 마을주민들의 친구가 되여 자리하고 있다 버스정류소 앞에는 마을자랑비가 있다. 광산김씨들이 자리하고 있다. 법수리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강외면(江外面)의 지역으로서 뒷산에 법수사(法水寺)라는 절이 있어 ..
풍림정사(楓林精舍)는 한말의 성리학자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가 1889년(고종26)에 창건하고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건물이다. 정면 6칸반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다. 구조는 우측 1칸은 부엌이고 2칸은 온돌방으로 방앞은 툇마루를 놓았고 2칸은 강당구조로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