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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17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율리 김득신 묘에서 바라보는 율리의 풍경이 평화롭습니다. 아버지 김치의 묘와 김득신의 묘 그리고 김득신의 아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증평읍 율리 김 치 신도비(曾坪邑 栗里 金 緻 神道碑) 증평읍 율리 김 치 신도비(曾坪邑 栗里 金 緻 神道碑)증평읍 율리에 있는 안동인 김 치의 신도비이다. 김 치는 1577(선조 10)∼1625(인조 3).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심곡(深谷). 석(錫)의 증손으로,king6113.tistory.com 안흥군(安興君) 남봉(南峰) 김치(金緻 : 1577∼1625)의 묘갈은 현종 15년(1674) 증평읍 율리(曾坪邑 栗里)에 있는 그의 묘소 앞에 세웠는데,비문(碑文)은 아들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
증평읍 율리에 있는 삼기저수지입니다.삼기저수지 주위로 지자체에서 둘레길인 등잔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등잔길 주위로 독서광이였던 김득신의 모형과 더불어 김득신이 지은 한시등을 적어 놓은 비석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증평군 지역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교통로상의 중요 거점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불상들은 주로 교통로상의 한 구석에 분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지역에 분포하는 석조보살입상(石彫菩薩立像)들은 고려 초기에 충청지역에서 미륵사상과 함께 유행하는 거불계통(巨佛系統)의 불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충청북도 지역의 거불들은 대개가 라말려초(羅末麗初)에 각 지방에서 득세했던 호족(豪族)들과 관련되어 조성되었던 것들로 충주의 미륵리사지의 석불입상을 비롯한 지금의 5번 국도를 따라 연결되는 석불입상이나, 청주 용화사의 석조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증평군의 불적(佛蹟)들은 광덕리불상,남하리사지 불상,미암리사지 불상등 거불계통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栗里 石造..
화성리 북촌을 흔히‘명암(鳴岩)’또는‘우루배’라고 한다. 이곳에 울어바위(鳴岩)가 있어 유래한 지명이다.어느 날, 한 노승이 이곳 마을앞을 지나다가 큰 바위를 보며, “참으로 영험하구나!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황소 울음소리가 날 것이다.”라고 했다.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노승의 말을 빌어 바위를 명암(鳴岩 ; 울어바위)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나, 한일합방이 되었을 때, 바위에서“웅∼ 웅∼”하는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흙에 파묻혀 그 형상을 확인 할 길이 없다. 명암마을 입구 초입에 있는 곡산연씨세거지비( 谷山延氏世居地碑)이다. 마을회관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자연석으로 만들어 세웠으며 몸돌에는 부모를 향한 효를 다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곡산연씨를 이 곳 ..
증평읍 율리 삼기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는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입니다.얼굴등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으로서 본래는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삼기저수지가 완공되어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불상의 높이는 2.1m이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썼으며 얼굴과 몸체는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넘쳐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다. 인상은 풍만하나 목에 삼도(三道)는 없으며,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오른손은 가슴에 얹은 모습이다. 이 수인(手印)은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여원시무외인(如願施無畏印)이다. 보관 밑에 굵은 띠가 돌려져 있고 정면에는 둥근 장식이 있으나 띠 안의 문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