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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5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선씨들의 재실입니다. 숭모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갈산리로 동네에 접어들면서 동네입구 우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밑인 절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모재(崇慕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숭모재 옆으로는 샌드위치판넬조 관리동이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노(魯)나라 대부(大夫) 선백(宣伯)의 후손인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1382년(우왕 8) 명나라 문연각 학사(文淵閣學士)로서 사신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전라도안렴사가 되어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격퇴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寶城)으로 은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
갈산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 이었으며, 조선 영조후반(1750-1776)에는 갈산리와 소암리로 분리 되어 있었으며 현종때(1845년경) 갈산리로 통합 되었고 1910년 다시 갈산.소암.삼산리로 나누어저 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삼산리의 일부를 삼산리로 넘겨주고 갈산리라 하였습니다. 낭성면 갈산리 안갈미에 있는 보성오씨 사당입니다. 안갈미(上葛)에 있다고 하여 상갈사(上葛祠)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근간에 지은 사당으로 추정이 됩니다. 갈산리에 있는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갈미(上葛) : 갈뫼 안쪽에 있는 마을 둠벙골(蘇岩) : 갈뫼 남서쪽에 있는마을(큰 둔벙이 있었다함.) 백호들 : 둠벙골 남쪽에 있는 마을 중간말 : 갈미 남쪽에 있는 마을 주막거리 : 백호들 서쪽에 있는 ..
문산관은 조선시대 문의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 보름으로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한편,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한 관아건축이다. 건물구조는 지붕이 좀더 높은 3칸의 정당이 중앙에 있고 그 좌측에 4칸, 우측에 3칸의 익실(翼室)을 두었으며, 전면에 중문․외문, 측면에 무랑 등이 부속되었고, 정당은 벽돌을 깔고 좌․우익실은 한국식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66년(현종7년) 문의읍지에 현령 이명하가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붕의 암막새 기와에‘옹정육년 무신사월(擁正六年 戊申四月)’이라는 명문으로 보아 1728년(영조4년)에 중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 건물은 1979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문의향교 ..
옹기는 일상생활에 유용한 쓰임새가 있는 그릇으로 붉은 갈색의 유약을 입혀 구운 질그릇을 말한다. 옹기는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예부터 옹기를 제작하는 관원이나 장인을 두어 생산토록 하였다. 기능보유자 박재환의 집안도 200여 년 전부터 옹기를 만들어 왔다. 박재환의 6대조인 박훈(朴勳, 1484∼1540)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하여 강외면 연제리에 정착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박재환은 1941년 11살 때에 생활 타개책으로 아버지 박원규의 뒤를 이어 옹기공장에 취업하며 장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1958년부터 보은 송평리 옹기공장, 용인 삼계리 옹기공장, 안성 양협리 옹기공장, 인천 경서동 옹기공장 등에서 옹기 기술을 전수받았다. 1971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선대..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 극락보전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지장보살좌상입니다. 1972년 용암사 경내에서 공사중 이불병립상과 함께 발견하였다고 합니다.그간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극락보전에 안치하였습니다. 고려시대중후반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보살입니다. 도리천(忉利天)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 地藏十輪經≫과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이 있다. 이들 경에 의하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