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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5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순치명 석불(順治銘 石佛) 못미쳐 있는 버스정류장의 팻말에 선돌이라고 적혀있다. 이 곳의 지명이 구전으로 전해지기는 선돌맹이 또는 장승백이라고 불리웠다고 하니 순치명석불과의 인연이 아닌가 한다. 주위의 사찰등은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보아 아마 민간에서 모시던 미륵신앙의 ..
남일면 고은리에 있는 서낭당입니다.고은리 서낭목앞으로는 야산에 경주이씨천(慶州李氏阡)이라는 비석이 서있습니다. 천(阡)이라는 뜻에는 논이나 밭의 경계를 뜻하는 두렁이라는 뜻과 더불어 묘지로 통하는 오솔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이 곳 고은리가 경주이씨가 대성(大姓)이었던 집성촌 동네입니다. 아직도 동네주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새끼줄도 두르고 멋진 제단도 있습니다.예전의 큰 길이 생기기전에 동네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가까운 곳에 풍천공 경주인 이시득의 유허지가 있습니다.곧은 터 즉 고은리(高隱里)라는 지명은 풍천공의 깊은 학문과 높은 덕행을 추앙하며 고고한 사군자가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땅이라.이를 기리어 고사지은(高士之隱)이라고 부른대서 유래한 것이니 고은리에서 고은(高隱)이라 ..
추봉영당은 갈산리 마을을 접아들면서 오른쪽에 야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추봉영당은 추봉 오저의 영당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추봉영당은 지금 돌보는 이 없이 황폐하기 그지없다. 영당의 대문도 없고 잡초가 우거져서 출입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오저는 조선 후기의 ..
菩薩寺重修碑 (篆題)有明朝鮮國忠淸道淸州洛迦山菩薩寺重修碑銘幷 序 坡平 尹深 譔幷書 俗離一支西去至淸州治之東十里所而止者曰洛迦山其山巖峻崷崒自然秀異有刹曰菩薩寺盖刱自勝國至今爲佛法大興之地麗之恭愍王錫土田供香火費旣又降旨完護之無所與焉天順二年十二月又有 敎旨 國王下押署安寶以時考之盖在我 惠莊大王之世押雖不敢認而寶乃昭信之寶宜禪門世守爲寶而誇鄙衆刹也恭惟我 朝本以右文興化而僧道二敎亦甞傍設降 旨加恩事或有焉己卯名賢滿 朝明一統之義罷昭格署罷兩宗科則道流遂廢釋敎亦不振」凡寺刹土田臧穫各侵削耗散桑門之饌無復異時之盛而是寺亦凋弊旁落矣老僧瓊特者湖之燕歧人覺性大士號碧巖之高弟也始以敏幹選置南漢城摠攝八道僧敎領踐更僧副居守在城中凡幾年雉堞樓櫓寺舍多所繕完用其勞授卿階旣老歎曰歸乎歸乎吾乃緇流唯佛事是修顧棲棲城隍間老且死有愧初心矧茲階級又寧我有耶菩薩寺是吾從師受戒之所聞其闕狀己久盍歸而修之遂罄..
월리사의 연혁은 도로에서 사찰입구로 들어가는 곳에 자리한 사적비의 내용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665년(현종 6)에 세워진 사적비에는 형강(荊江) 동쪽 구룡산에 절이 있는데, 이름을 월리사라 한 것은 절이 높아 달에 가깝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절 아래에 월동사(月洞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1645년(인조 23) 명현원학(明玄元學)대사에 의해 현위치로 옮겨 법당을 짓고, 금불상과 승방, 선실을 짓는 등의 중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창이후 절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였겠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해서 짐작해볼 따름이다. 대웅전 처마끝의 암막새 기와에 1730년(영조 6)에 해당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