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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 (159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은행리 지명을 갖게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수세는 양호한 편입니다.지금의 지여해 충신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현재 외손인 은진 송씨(恩津宋氏) 안소당공파(安素堂公派)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일면 은행리에 있는 지여해 충신각입니다. 지여해는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의 후손이며, 시직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
북이면 부연리 못미쳐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인동장씨 충렬공파 집안 비석입니다.
문의면 소전리 도로에서 후곡리로 가는 길가에 옹달샘이 있습니다. 옹달샘 위로는 작은 석탑도 쌓여 있고 무속터의 흔적이 보입니다. 옹달샘에도 치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용흥국민학교는 1934.05.01 문의공립보통학교 부설 후곡간이학교 설립인가 1941.03.31 문의공립보통학교 부설 후곡간이학교 폐교 1941.04.01 용흥공립국민학교 설립인가(1학급 48명) 1980.03.01 폐교(대청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 비석의 전면에는 용흥국민학교유적비( 龍興國民學校遺蹟碑 )라고 하여 문의면 소전리 대청호반이 바라보이는 곳에 사향탑(思鄕塔)과 함께 서있습니다.1996년 10월에 졸업생들의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
후곡리는 조선시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이성징(1608)의 호가 후곡임을 볼 때 그 이전에도 후곡으로 불리었음이 인정된다. 조선 영조 후반 이래 도곡리와 후곡리로 이루어져 있다가 1910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벌말 뒤골짜기가 되므로 후곡리라 하여 청주군 용흥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의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모두 수몰 이전하여 각기 타지로 전출하고 24호가 주택자금을 받아 새로이 한옥으로 이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몰전 까지만 해도 매우 큰 부락으로 200여 세대가 살았던 곳이다. 마을의 주된 부락은 마을 서쪽 금강변에 발달한 평야에 형성된 벌말(평촌)이며, 마을 남쪽은 노개골들이 있고 북쪽은 느저울들이 있다. 벌말은 충남 대덕군과 연결하는 벌말 나루터가 있..
아! 조상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 서로를 귀히 여기고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정을 나누었던 내 고향 벌말이여! 내 고향 벌말이여. 정답게 어울려 살아온 삶의 쉼터! 포근한 어버이 품속 같아라. 아! 이 곳에 잊지못할 동심이 있었으니 꿈엔들 어이 잊으리오. 국가백년대계의 사업으로 대청댐이 완공되니 때는 1979년 당시의 가구수는 100여호 인구는 700여명 문앞뜰,노개뜰,느저울뜰,기름진 옥토를 경작했으며 동쪽으로는 뒷골 남쪽으로는 독골 서쪽으로는 우리가 가장 정이가는 금강물과 나룻터 하얀 백사장이 있었네.웃여울 아랫여울에서 천렵하고 미역감던 우리들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마음의 고향! 나라를 위해 정다웠던 이웃들은 마음속에 묻고 뿔뿔히 흩어진지 어언 16년! 아!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겠지만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