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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남연년 (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의령남씨의 유지(遺地)를 표시하기 위한 비(碑)이다. 남연년 충신각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세손비(世孫碑), 세파비(世派碑), 세장비(世葬碑)는 세족(世族)의 유지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것들로서 성격이 비슷하다. 의령남씨 세손비는 1888년(고종 25)에 세워졌다. 비의 총 높이는 273㎝이며 3단으로 구성된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90㎝, 앞면 74㎝, 측면 32㎝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0㎝, 앞면 120㎝, 측면 80㎝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33㎝, 앞면 122㎝, 측면 92㎝이다.비제(碑題)는 ‘의령남씨세손비(宜寧南氏世孫碑)’이다. 비석 앞면과 왼쪽 면에 비문이 있으며, 오른쪽 면에는 ‘종대(宗垈)’라고 쓰여 있다.
원남면 상노리에 위치하고 있는 남연년의 충신문입니다. 남연년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강개한 기질이 있어 『한서(漢書)』를 읽었고, “대장부가 눈을 씹어 먹고 담비 털로 잠을 자는 괴로움이 있어도 어찌 불가능이 있으랴”하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였는데 그때 남연년이 무술하던 초록바위가 노래기 중말 동쪽 산에 있다. 1689년(숙종 15)에는 부친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는 효행이 있었으며, 아우 남극년(南極年)과 맹골[孟谷] 아버지 묘에서 시묘살이를 하자 범이 매일 와서 벗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황해도병마우후로 있을 때는 곰이 고을에 들어와 사람을 해치자 그 곰을 화살로 잡아 가죽으로 상자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전하고 있다.도승지 박문수는 “가위 열장부(烈丈夫..
[이봉상,남연년,홍림 의 위패가 있는 표충사입니다] 이인좌(李獜佐)가 군사를 일으킬 때, 처음에는 상여로 꾸미고 병기를 묶어 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들이 모두 적도(賊徒)였다. 수십 개의 상여를 메고 청주성(淸州城)으로 들어오니, 영장(營將) 충장(忠壯) ..
상노리 경로당입니다 남연년의 충신각은 이 경로당 뒷편에 있습니다. 남연년은 감찰 두명(斗明)의 아들로 음성군 원남면 상로리 천복동(天卜洞)에서 출생하였는데 젊고 어렸을 때부터 강개한 대절이 있어 한서(漢書)를 읽고 무에를 연마하였다. "대장부가 어찌 눈을 씹어먹고 담비털로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세 충신을 모시는 사당이다.조선 영조 때의 충신인 이봉상(李鳳祥)[1676~1728], 남연년(南延年)[1653~1728],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부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으로 침입하자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봉상을 비롯하여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비장(裨將) 홍림 등이 끝까지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이들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31년 청주목사 조준명(趙駿命)이 주도하여 삼충사를 세웠으며, 1736년에 표충사(表忠祠)로 사액을 받았다. 본래의 사당은 청주읍성의 북문 안에 있었으나, 1939년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청주군수 이해용(李海用)의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