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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병자호란 (1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의면 구룡리에 있는 이 충효각은 1861년( 철종 12)에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과 싸우다 순절하여 병조참판에 증직된 최응허(崔應虛)와 효행으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에 증직된 그의 아들 최란선(崔蘭善) 부자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충효각은 1861년에 중건하고 1984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2개의 충효문 편액을 달았다. 최응허와 최란선은 부자(父子)관계입니다. 최응허와 최란선의 편액이 같이 걸려있습니다. 최응허는 (1572~1637)는 조선조의 충신으로 경주인으로 문의면 구룡리 출신입니다. 병자호란 때 청국(淸國)으로 끌려가 순절하여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1681년(철종2)에 문의면 구룡리에 정문이 세..
벽오사(碧梧祠)는 병자호란 당시 만노성에서 통솔자 없이 방황하는 난민들을 통솔하여 적군을 막아낸 유창국(柳昌國)의 공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진천군 진천읍에서 백곡저수지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중리 장수마을을 가리키는 바위가 도로 왼쪽에 나타난다. 그 바위 쪽으로 좌회전..
청산면 예곡리에 있는 박문강의 충신정려문에는 상산박씨충신정려(常山朴氏忠臣旌閭)라는 현판을 걸고있다. 예곡리(藝谷里)라 부르게 된 것은 “예실”이라고 부르는 옛말을 발음대로 한자를 쓴 것이다. 충정공 송시열의 친필 “예곡정사(藝谷精舍)”의 문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예곡리는 자연마을로 윗예실과 신촌, 아랫예실 세개의 마을로 되어있다.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집성촌으로 호랑이 모양의 산세가 품고 있다는 마을 상예곡에는 1919년 김철수, 김인수, 김지수, 최남석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했던 나라 사랑이 남다른 충혼의 마을이기도 하다. 하예곡리는 능성구씨(陵城具氏)와 밀성박씨(密城朴氏)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예곡삼경이라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보청천 맑은 물로 옥토를 이뤄 잘사는 마을이다. 또한 병자호란 ..
남일면 화당리 지장골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문인 송시영의 묘이다. 가까운 곳에 충현묘가 자리하고 있다. 1588(선조 21)∼1637(인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공선(公先) 혹은 무선(茂先), 호는 야은(野隱). 봉사(奉事) 구수(龜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응기..
구룡리는 서북쪽에는 대청호(大淸湖)가 있으며, 대부분 낮은 구릉지이다. 장군봉, 구룡소류지가(구룡1리)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사리, 문의땅(묘암), 오룡동 등이 있다. 구사리는 옛날에 아홉 진사가 났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문의땅은 뒷산에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룡..
안소당송선생유허비(安素堂宋先生遺墟碑)는 가덕면 병암리에 위치하고있다. 유허비(遺墟碑)라 함은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비의 상태로 보아 비대석은 후대에 후보된 것으로 보인다. 비의 건립시기는 숭정후4계해년(崇禎後四癸亥年)이면 1863(철종14)년이다. 유허란 유지(遺址)·유적(遺蹟)·구기(舊基)와 같이 ‘남긴 터(자취)’·‘옛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 곳, 또는 순절(殉節)하거나 귀양살이하였던 곳을 가리킨다. 고려시대까지는 유허비라는 명칭의 비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시대에는 유허비를 비롯하여 유지비(遺址碑)·구기비(舊基碑)라는 명칭의 비가 적지 않게 조성된다. 경기도 개성에 ‘高麗忠臣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