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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보성오씨 (3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오유립(吳裕立.1575-1658)은 초명이 효립(孝立)이고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이다. 판관 오세양(吳世暘)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오경인(吳景仁)이다. 어려서 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나 광해군시기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으로 돌아왔다.이후에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에 월송정(月松亭)을 지어 이 곳에서 가락을 붙여 시를 즐겨 읊었다.노호리 입향조이다. 신구 비석이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월송처사오공휘유립지묘(月松處士吳公諱裕立之墓)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오유립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그는 오정립 오시립과 더불어 노봉서원을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향풍을 진작시켰으며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증직되였다. 그 후 산세가 좋은 금강가에 위치한 노호리에 정착하였다. 노봉서원은 대원군시절 철폐되여..
오맹수(吳孟秀 1899~1992)는 보성인으로 노호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치장(致長)이며 호는 양호재(養浩齋)이다. 능참봉,문의향교 장의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서는 [양호재문집]이 있다. 비석에는 참봉보성오공맹수지묘(參奉寶城吳公孟秀之墓)라고 음기되여 있다.
몇번이고 찾았던곳. 안개낀 어는날 보성인 오연태불망비와 보성오씨열녀문과 효자문이다. 현도면 현도
청안면 청용리에 위치하고 있는 효자 김종현과 효부 보성오씨의 효행비이다.자손과 마을사람들에 의하여 1991년에 건립되였다.비석 전면에는 효자김공종현 효부유인보성오씨의 비라고 한글로 음각하였으며 비의 뒷면과 옆면에는 효자 김종현과 효부 보성오씨의 효행과 표창기록등이 음각되여 있다.김종현은 1883년 생으로 부모에게 끝없는 효행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효의 본보기가 됨으로서 1926년 성균관에서 효행상을 받았으며 1947년에는 청안향교의 전교로 유교발전에 많은 공로를 인정 받았다. 더불어 부인인 보성오씨도 시부모를 극진히 섬김으로 주위에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부모님이 병환중에 산꿩이 먹고 싶다고 하여 꿩을 잡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잡지를 못하자 기도하니 나락더미에 숨어있던 꿩을 발견하여 봉양할수 있었다..
청원군 현도면 상삼리에 위치한 보성오씨들의 사당이다. 현재 관리상태는 양호하며 기양사를 주변으로 보성오씨들의 선대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