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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안남면 연주리 (1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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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에 있는 배바위공원입니다. 舟岩(배바위)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있습니다.황토흙 등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내구성이 부족한 듯 실내 내부는 파손된 부분이 눈에 띄입니다. 안남면을 이루고 있는 여섯개소의 동리이름도 형상화 하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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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마을입구에 서 있던 비석을 이 곳 광장으로 옮겨서 세웠습니다. 예전에는 각 각의 비석이 풀숲에 쇠창살로 막혀 있었는데 시원하게 잘 조성하여 놓았습니다.비석의 대한 안내문도 세웠으면 합니다. 이 곳 연주리는 광산김씨가 대성이었습니다.광산김씨 관련 비석이 많습니다. 연주리라는 명칭은 연지동의 연(蓮)자와 주암리의 주(舟)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주암은 배바위를 한자화 한 것이며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일제때 그 바위를 깨뜨려서 그 형태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바위가 도덕리 서당골 마을 입구에 있습니다. 안남면 연주리 김선덕송덕비(安南面 蓮舟里 金善德頌德碑) (tistory.com) 안남면 연주리 김선덕송덕비(安南面 蓮舟里 金善德頌德碑) 안남면 연주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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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2리 중촌(중간말)에 있는 돌탑입니다. 돌탑은 자연석을 쌓았으며 위에는 작은 선돌개념의 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예전에 동네우물이 있던장소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주리는 연지동(蓮池洞), 주암(舟岩), 고성리(古城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가 살았다고 두 마을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1891년 신묘장적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주암리, 연지동, 고성리를 합하여 연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연주1리 배바우에 101호 244명이 거주하고 연주2리 독락정에 49호 111명이 살고 있다. 연주리라는 명칭은 연지동의 연(蓮)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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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중간말에 있는 향나무샘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예전에는 이 곳이 동네의 소식을 듣고 이야기 하는 곳이었을 겁니다. 상수도가 놓아지면서 우리들의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풍경중에 하나입니다. 우물가에는 향나무를 심었는데 향나무의 향으로 살균과 살충효과를 보기위해 심었습니다. 연주리는 연지동(蓮池洞), 주암(舟岩), 고성리(古城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가 살았다고 두 마을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1891년 신묘장적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주암리, 연지동, 고성리를 합하여 연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연주1..
안남면 연주리 면사무소를 뒤로 길을 재촉하다보면 교회앞에 건너편에 보이는 효자비입니다. 지금은 비각을 세워 비석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비각안에는 김용선시헤불망비와 김노성지려라 적힌 비석2기가 있습니다. 면사무소 뒷쪽에 위치한다고 하는 정보로 찾다 보면 민가시이로 이쁜 모습을 보입니다 면사무소 뒷쪽에 있는 교회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효자비각은 시멘트블럭담을 두르고 있으며 효자각은 새로 보수를 했는지 단청도 없이 조금은 생경스럽습니다. 김용선의 호는 춘화(春化) 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입니다.김용선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자상하며 항상 이웃 어른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그가 나이 8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음식을 먹지않고 너무 슬퍼하여 마을사람들은 물론 문상객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