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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포동마을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사리면 이곡리 포동마을에 해평윤씨가문의 공적비와 효열비 옆에 토지 즉 땅을 관장하는 토지신을 모신 제단이 있다. 종중에사 만든것이다 제단에는 해평윤씨승지공응시파길구호구공파종중(海平尹氏承旨公應時派吉求浩求公派宗中)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리면 이곡리 포동마을에 있는 해평인 윤길구 윤호구 형제의 공적비입니다. 공적비는 문중의 불망비와 효부비와 함께 나란히 키를 맞대고 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해평윤공휘길구호구공적비(海平尹公諱吉求浩求功績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형제의 공적내용이 기술되..
해평인 윤의영(1881-1967)은 해평윤씨승지공파 포동문중에 여러가지로 마음과 물질로 문중의 발전을 위함으로 그 정신이 후세에 귀감이 되므로 이 비석을 세웠다.1989년 비석을 세웠으며 관리는 해평윤씨 포동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해평윤공휘의영불망비(海平尹公諱義..
창녕성씨 채봉(采鳳)여사는 16세의 어린나이에 해평윤씨가문에 시집을 와서 가정생활을 잘 하며 가정생활을 잘 이끌며 어른을 공경하고 자식을 잘키웠다.남편이 30세에 우연히 병을 얻어 3년간의 와병중에 온갖 치료약을 다하고 간호하였으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성씨부인은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남은 3남2녀를 양육하며 갖은 많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가세를 바로잡은 장한어머니요 효열부이다.이에 괴산향교에서는 성씨부인의 효와열을 후손에게 기리며 본이되는 모습으로 삼고자 1990년 5월5일 효열비를 세웠다. 비석의 위치는 사리면 이곡리 70번지이며 관리주체는 해평윤씨포동문중이 관리하고 있다.비석의 전면에는 해평윤공기섭부인창녕성씨효열비(海平尹公麒燮夫人昌寧成氏孝烈碑)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창녕성씨의..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포동마을에 있는 해평윤씨의 세거지비와 해평윤씨일가의 공적비와 효부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포동마을에는 해평윤씨와 관련된 장군대좌형의 명당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포동에 거주하는 해평윤씨가 장군대좌형의 자리에 무덤을 쓴 후 후손을 낳았는데 장군재목이라고 했다.나라에서 알면 역적이 난다하여 집안에 피해가 될까봐 집앞에서 어깨를 끌로파서 죽였다. 일설에는 관에서 죽였다는 설이 있다.나라에서 장군이 났다하여 잡으러 왔는데 방문을 열고보니 관군을 피해 천장에 붙어 있었다고도 한다.사리면 백마산에 백마가 출현하여 장군을 맞이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포동마을의 장군재목이 죽자 백마산에서 백마가 나타나 사흘간을 울다가 죽었다고 한다.[괴산군지] 포동(蒲洞)리의 어원은 포동을 한자로 부들포(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