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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5 (1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연풍면 행촌리에 있는 연풍직행정류소 건물입니다. 행촌리 초입에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풍경중에 하나입니다.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에 버스 시간표가 있고 작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곤 했지요. 요즈음 같은 마이카시대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아득한 풍경입니다

마로면 관기리에 있는 고봉정사 입니다. 조선 중종 때 최수성(崔壽峸)·김정(金淨)·구수복(具壽福) 등이 함께 창건하고 강학(講學)을 행하였으며, 구일봉(具壹奉)이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1981년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정사를 해체하여 보수하고, 고봉사(孤峯祠)·관리사(管理舍)·창고·삼문 등 담장을 새로 지었다. 구씨종중(具氏宗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쓴 고봉정사의 현판이 있었으나,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최규하(崔圭夏)가 쓴 휘호입니다. 관기리 시내에 있던 완산이씨 열녀각도 고봉정사 옆으로 이건하였습니다.

지난 삼월 어느 날 청주 김진동문우가 나에게 말하기를 송곡선생께서는 일찌기 몽매 무지한 우리를 배움의 길을 열어 주시느라 아까운 청춘을 불살으시고 끝내 세상 영욕을 떠나친 채 청적담박하게 한평생을 바치셨으니 그 근고하신 은덕을 무엇으로 형언할수 있으랴. 일전에 이상필 한일석 이원훈 같은 몇 몇 뜻있는 문우들이 분기발의하여 사은비를 세우기로 통문을 돌리니 수십여 문우가 열화같이 동참하여 자금을 모아 힘차게 이 일을 추진하는 중 여러 문우의 엄숙한 명으로 비문을 위촉하니 수락하기 바란다. 아 나의 천박한 식견으로 어찌 이를 감당하리오 또한 문도의 후진으로서 굳이 사양할 수가 없어 대략 아래와 같이 서술해 명을 지었으니 "어두운 밤 횃불되어 길 잃은이 인도하고 적막강산 종을 울려 많은사람 일깨우니 애향하신 그..

청원군 문의면 노현리 마을입구에 있는 제주인 고창석의 공적비이다. 비석을 바라보며 좌측에 있는 비로서 비의 건립시기는 1995년 8월 13일이다. 비의 전면에는 제주고공창석공적비(濟州高公昶錫功績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고창석의 활동내역등이 적혀있다. 일제강점기시절 문맹을 퇴치하고 민족의식의 고취등을 위해 힘쓴 교육가 고창석의 공적비이다. 고창석은 일제강점기시절 암울한 시대에 교육기관등의 부재로 인하여 수많은 재목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문맹을 퇴치하고 나라의 재목을 기르기 위하여 농촌진흥회를 결성하여 기금을 조성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각계로 부터 후원을 받아 교사를 마련하여 원근의 많은 사람들에게 문맹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교육에 힘썼다. 일제강점기시절..

이 충신각은 조선 선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 순직한 윤여익(尹汝翼 ; 1548~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윤여익은 중봉 조헌선생의 문인으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을 따라 의병에 참가하여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였다. 1883년(고종 20)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정면 2.3m, 측면 2.0m)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지붕부재는 최초 건립당시 부재를 사용하였으나, 하방석 및 주초는 이설한 뒤 건물을 높이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재질로 시공하였다. 내부에는 ‘忠臣旌閭 忠臣將仕郞坡平尹汝翼之閭 光緖 九年 癸未 八月 十九日 啓’’라는 현판과 행장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있다. 1883년 (고종 20년)에 정려가 하사되었으며 조중봉 ..

문의면 노현리 마을입구에 있는 비석군중 비석을 바라보며 맨 우측에 있는 비석이다. 비석에는 열부안동김씨의적비(烈婦安東金氏懿蹟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열부안동김씨추진위원회에 의하여 1997년에 건립하였다. 열부 안동김씨는 천성이 온순하고 어려서 부터 향리에 소문이 자자한 효녀였다. 19세 되던 해에 문의면 노현리 한씨가문에 출가하여 시부모 모시기를 친부모 모시 듯 하고 동기간에 우애에 앞장을 서니 온 동리에 안동김씨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니 사방으로 약을 구하며 시탕하고 대변등을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알려했고 그 마저도 효험이 없으니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주혈을 하여 남편을 살리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노력도 헛되이 남편은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남편이 죽은 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