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사과과수원
- 법주사
- 효자문
- 상당산성
- 충주박물관
- 단지주혈
- 부여박물관
- 충북의 문화재
- 공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부도
- 곡산연씨
- 공산성 선정비
- 화양구곡
- 청주박물관
- 효자각
- 청풍문화재단지
- 보성오씨
- 선돌
- 밀양박씨
- 사인암
- 국립청주박물관
- 오블완
- 문경새재
- 한독의약박물관
- 경주김씨
- 문의문화재단지
- 각연사
- 티스토리챌린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Today
- Total
목록2023/09/06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溪邊石崖闢 시냇가에 바위벼랑 열렸으니 作室於其間 그 사이에 서실을 지었노라 靜坐尋經訓 조용히 앉아 경전의 가르침 찾아 分寸欲躋攀 분촌이라도 얻으려고 노력하고파. 「화양동 바위 위의 정사에서 읊다(華陽洞巖上精舍吟)」 流水桃花在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 뜨고 桑麻雨露多 뽕나무 삼나무에 우로가 많으니 俗傳無量號 무량이라 전하는 마을 이름 知是武陵訛 무릉도원의 와전인가 하노라. 「무량촌 사람에게 써서 주다(書贈無量村人)」 화양구곡 중 제 4곡 金沙潭 (금사담)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하여 지어졌고 1666 송시열이 바위 위에 암서재 지어놓고 학문을 연마 하고 후진양성을 했다고 한다.암서재 아래 바위에는 ‘명나라 황제가 사는 곳의 구름은 끊어지고, 주자가 살던 무이산은 비었다.’라는 뜻의 ‘蒼梧雲..

승정원일기 2393책 (탈초본 118책) 헌종 7년 8월 5일 병술 18/27 기사 1841년 道光(淸/宣宗) 21년 以成近默爲執義, 洪直弼·南性敎爲持平, 李在立·姜獜岳爲正言, 李㘾爲應敎, 李憲瑋爲判尹, 金鍏爲同經筵, 任秀龍爲典籍, 任石老爲掌苑別提, 李在稼爲淸州牧使, 任奭朝爲義城縣令, 趙奎淳爲泰仁縣監, 金履載爲分內醫提調, 兼養賢直長單張德良。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41년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이재항과 함께 이 곳을 찾은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재가는 1824년 광릉참봉을 시작으로 금부도사 군자감봉사,직장,주부를 거쳐서 1831년에는 황간현감을 지냈으며 그 후 1835년에는 영평현감 1837년에는 거창부사를 거쳐서 1841년에 청주목사 1844년에의성현감 1846년에 안주목사를 거쳐1862년에 돈녕부도정을..

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곶가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이서李舒 이지형李趾亨의 이름과 함께 조병현趙秉鉉,조구하趙龜夏,조봉하趙鳳夏,박사호朴思浩,이택영李宅永,홍원석洪元錫 김희金憙 등의 이름도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서(李舒:1332~1410) 조선 전기에, 사헌부대사헌, 문하시랑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양백(陽伯) 또는 맹양(孟陽), 호는 당옹(戇翁)·송강(松岡). 고려 고종 때 시중(侍中)을 지낸 이연수(李延壽)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연경궁제학(延慶宮提學) 이기종(李起宗)이다. 홍주를 관향으로 한 것은 아버지 때부터이다.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군부좌랑(軍簿佐郎)에 올랐으나, 세상이 어지럽고 정치가 문란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