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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공주(公州) (4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윤치응(尹致膺)의 자는 취여(就汝)이며 1794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아버지는 이참(吏參)을 지낸 윤명렬(尹命烈)이다. 공산성입구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공주판관 윤치응의 선정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판관윤후치응영세불망비(判官尹侯致膺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있습니다. 진천읍 교성리 현감윤치응선정비(鎭川邑 校成里 縣監尹致膺善政碑)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tistory.com) 진천읍 교성리 현감윤치응선정비(鎭川邑 校成里 縣監尹致膺善政碑) 헌종 5년 6월 29일 계사 1839년 / 韓益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洪 稚圭爲同經筵, 韓弼敎爲禮賓主簿, 李晉會爲大興縣監, 尹致膺爲鎭川縣監, 李濟夏爲禮山縣監, 嚴錫鼎爲唐津縣監, 李翊會爲大 king6113.tistory.com 윤치응은 충북..
공산성 입구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암행어사 이범조의 불망비 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암행어시이공범조영세불망비(暗行御史李公範祖永世不妄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범조는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당지역을 순찰하고 각고을의 수령을 죄주거나 포상토록 청하고 토색질이 심해져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문제를 보고했으며 결총(結總)을 개량할것을 청하였다. 또한 공주와 연산의 유생 몇 명의 등용을 추천하기도 하였다.[공주시지] 이범조는 1848년(헌종 14)~미상. 조선 말기 관리. 자는 자술(子述)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명중(李明中)의 후손이며, 고조는 현감(縣監) 이의헌(李義獻)이고, 증조부는 진사(進士) 이문연(李文淵)이며, 조부는 이인두(李寅斗)이다. 부친 효력부위(效力副尉) 용양위부사용(龍驤..
공산성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제미천교명비석입니다. 거칠게 치석된 자연암석을 다듬어 비석모양으로 파내어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마애비로 보아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제민천교명(濟民川橋銘)이라고 각자되어있습니다.
공주 공산성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관찰사를 지낸 조병현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조공만세불망비(觀察使趙公秉鉉萬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을미4월(1835년)입니다. 조병현은 1791(정조 15)∼1849(철종 즉위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길(景吉), 호는 성재(成齋)·우당(羽堂). 조경(趙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진명(趙鎭明)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득영(趙得永)이다. 어머니는 이문원(李文源)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교리를 거쳐 1827년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 뒤 조만영(趙萬永)·조인영(趙寅永)·조병구(趙秉龜) 등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중심 인물이 되어 안동 김씨(..
공산성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충청관찰사인 김수근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김공수근영세불망비( 觀察使金公洙根永世不忘碑)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김수근(1798~1854)은 조선후기 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부(晦夫),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 김원행(金元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직(金履直)이고, 아버지는 목사 김인순(金麟淳)이며, 어머니는 신식(申○)의 딸이다. 1828년(순조 2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음사(蔭仕)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1833년 시제에서 수석하여 전시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이듬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5년(헌종 1)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가 된 뒤 1837년 대사성..
공산성 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관찰사 이근우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이공근우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根友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여 있습니다. 이근우는 1852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비변사등록"에 의하면 재임중 재해를 입은 민가에 휼전하고 당시 자주 출몰하던 이양선문제를 보고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853년 경상감사 홍열모와 함께 상정여미(詳定餘米 / 祥定米의 會錄分으로 보관하던 쌀)의 문제로 소란을 부렸다 하여 파직되였다. 忠淸監司 李根友의 狀啓에 대해 불에 탄 永同 등의 民家에 恤典을 거행하라는 傳敎 철종 3년 1852년 03월23일(음) ◯ 충청감사 이근우(李根友)가 영동(永同) 등 읍의 민가가 불에 탔다는 일로 장계에 대해 전교하기를, “이처럼 바쁜 농사철에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