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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3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선조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미륵석불.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귀는 길게 표현해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체보다 어깨가 넓어 당당한 느낌을 주며, 법의는 통견으로 길게 입었는데 왼쪽 어깨에서는 약간 사선을 이루면서 팔꿈치 부분에 걸쳐 있다.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옷주름은 둥근 모양으로 다리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둥근 옷주름은 대칭을 이루도록 하였는데, 하단부에 이르면서 V자로 마무리되었다.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서 손등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펴서 가슴에 대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한 시무외 여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몇번이고 다녀온곳이지만 갈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곤 합니다.마음에 들게 보려면 최소 5번 이상씩은 다녀와야 할까 봅니다.충북에 산재된 많은 지정 비지정 문화재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칩니다.언제나 마음껏 시간에 쫒기지 않고 대화를 나눌수 있으려나....한참이고 더운날 이었지만 한동안 나무그늘 아래서 석탑이랑 눈맞추고 왔습니다. 원평리의 일명 미륵댕이 마을에 있는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으로, 2004년 4월 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는 신라 성덕왕 1년(702)에 창건된 선조사(善祖寺)가 있었다고 하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자세한 사찰..
검은들(흑평)은 마산 봉수터에서 요도천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풍수지리상으로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거미혈에 해당하는 지형이기 때문에 요도천 제방의 미루나무도 베지 않고 있다. 마을 입구에도 2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거미줄을 치도록 하였고 그곳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모신다. 서낭당 신목인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흑평 검은들이라 하여 마을표지석도 세워 놓았다.
목행초등학교내에 위치한 향토유물원입니다. 문인석, 망주석, 맷돌, 절구 등이 수목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시절 목행초등학교 발전을 위해 힘쓴 안승언의 송덕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토유물원에는 안승언 송덕비 외에 문인석, 망주석, 맷돌, 절구 등과 수목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을 어떻게 마련하였는지는 미지수이다.
산척면 용암마을에 있는 성암사위쪽 밤나무농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마애불입니다. 마애불의 하단에는 일제강점기시절 징용을 나갔던 동네 청년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과 함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곳을 관장했던 면장의 이름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암석을 깍아 보관도 흉내내고 하였습니다.마애불의 모습은 약간 치졸하며 정교한 맛은 떨어집니다.근세기의 충주지방에 조성된 마애불로 당시의 민간신앙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코와 귀에는 약간의 인위적인 파손이 있습니다. 성암사에서 관리를 하는지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연등을 달기 위해서 설치한 철재구조물이 조금 거스릅니다 영덕리 마애불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당한 동네 청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영덕리 사람들이 조성한 것으로..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에서 암소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암소바위」 이야기는 살미면 서갑벌에서 공이동 하리를 향해 올라가는 약 16㎞ 지점에 있는 암소바위와 관련된 암석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는데, 당시 살미면 공이리에 살고 있던 주민 안편식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81년 중원군에서 발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와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각각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조선 초기 이진사(고려조 사관을 하던 술자도인)라는 사람이 공이동 어구에 자리를 잡은 후 아담한 정자를 세우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있는 곳을 신선이 단풍을 구경하는 자리라 하여 선관정이라 불렀다. 그런데 어느 노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