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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금가면 잠병리 막고개에 위치하고 있다.신도비는 후손들에 의하여 1973년에 세웠다. 1429년(세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정자가 되었다. 저작랑, 예문관감찰을 거쳐 1440년(세종 22) 통신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과거..
금가면 잠병리 금병마을에 있는 경주인 김충용의 자선비이다. 비의 내용으로 보아 금병노인회관을 지을때 토지등을 희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잠병리 각 마을 노인회 대표이름으로 단기 4314년(1981년)에 건립하였다. 금병노인정옆 화단에 길을 보며 위치하고있다. 비의 전면에는..
주의깊게 살피지않으면 그냥 지나칠 확률이 높다.예전에 목계우체국자리옆에 홍수흔적기념비라 하여 건설부에서 작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목계가 오늘날 같이 초라한 마을이 된 가장 큰 요인은 1972년 대홍수 때문일 것이다.1972년 8월에 태풍 베티의 영향으로 남한강유역에 집중적인 호우가 내렸다.단양등 상류지역에 큰비가 내리며 남한강 유역인 목계리도 그 법위에 속해 큰 재난을 입게 된다.홍수피해로 인하여 기존의 목계거리는 물을 피해서 다시 마을이조성되게 된다. 그 이후 기존 시기지는 쇠락하여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1972년 8월 대홍수로 인하여 마을의 대부분이 침수되어 아랫마을과 건넛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새마을이나 외지로 이주하는 바람에 마을의 모습은 급변하게 되었다.또 다른 요인은 1973년 목계..
부흥당은 충주시내에서 목계시내를 거쳐 목계나루터의 비석이 있는 곳에 이르러 우측 절벽을 보면 남한강이 내려보이는 낮은 절벽위에 위치하고있다. 목계나룻터쪽으로 차를 세우고 철제 난간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곳이 부흥당(富興堂)이다. 찾은날에는 애석하게도 민초들이 기도를 ..
소태면 주치리 외촌마을의 이정표를 보고 새로 포장된 고개를 넘으면 우측으로 팻말이 보인다. 큰길에서 소롯길을 따라 20여미터 가다보면 갈래길이 나오며 왼쪽길로 접어들어 이길을 지나 조금가다보면 좌측에 작은동산이 있다 홍승로 선생의 묘지는 그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