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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덕신초등학교의 옛날교문기둥입니다. 덕신국민학교라고 써있습니다.새로운 교문을 만들며 교문으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기본을 갖추고 기초 소양을 쌓아가는 어린이, 체력 단련으로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분명한 자기 목표를 갖고 실현 의지를 실천하는 어린이, 자주적 행동 습관과 독립심을 스스로 키워가는 어린이, 원리 탐구와 체험으로 독창성을 계발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6년 9월 1일 덕신국민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46년 9월 28일 초대 박승휘 교장이 취임하고, 1946년 10월 1일에 주덕국민학교로부터 2개 교실을 빌려 개교식과 입학식을 하였다. 1947년 2월 1일 주덕읍 제내리 공회당을 임시교실로 정하고 주덕국민학교에서 이전하였다. 1947..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입니다. 미륵리 불두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지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가에 있다. 불신은 없고 머리 부분만 있는 불두이다. 2000년 9월에 도난당했다가 2003년 봄에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으며, 이후 새로 만든 불신 위에 불두를 올려놓았다. 높이 138㎝, 너비 118㎝로 불두만 보았을 때도 거대한 크기이다. 불두의 전체인 모습은 역삼각형에 가깝고 머리 윗부분은 편평하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옛 불상의 느낌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 윗부분에 보관을 올려놓으려고 한 듯 편평하고, 코와 입 사이에 3줄의 선명한 주름선 등이 생소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조 불두로 전체적인 조형이 현대 조각을 보는 듯하다.[출처] 한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등. 미륵리 석등이 세워져 있는 사찰에는 석불입상, 오층석탑, 당간지주, 귀부 등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조성된 많은 유적·유물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있어 미륵리 사지로 불리고 있는데, 창건 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나 유적·유물이 전하지 않아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관련된 사찰로 전하고 있으며, 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들과 발굴 결과를 통하여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로 여겨진다. 조사 당시 대원사(大院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하여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석등은 사찰에서 중요 법당이나 석탑 등의 정면에 건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불교에서 석등은 불을 밝혀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입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은둔하기 위하여 가던 도중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앞으로 나 있는 고대 교통로는 소백산맥을 넘는 하늘재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된다. 따라서 충주 미륵대원지는 오래전에 사찰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통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원으로서의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원사(大院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는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석탑·석등·귀부·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으며, 발굴 결과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오층석탑은 석불 앞 사원의 중심에 세워져 있다.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비교..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후기 석재 귀부. 충주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번창한 사찰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많은 고려시대 석조 유물들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사찰의 창건 시기와 관련하여 현재 통일신라시대 수법을 보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초석들이 남아 있어 창건 시기를 올려볼 수 있으나, 직접적인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향후 구체적인 검토가 요망된다. 현재 충주 미륵대원지 일대에는 당간지주, 오층석탑, 석불입상, 석등을 비롯하여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귀부는 사각석등 옆에 놓여 있는데, 치석하다가 어떤 이유로 그만 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귀두(龜頭)와 귀신(龜身)의 외형으로 보아 귀부로 치석되었음..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북주(北周)[삼국사기에는 後周라 하였다]의 무제가 침입 시에 선봉장으로 활약한 온달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여세를 몰아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남하하였지만 아단성(阿旦城)에서 전사하였다. 현재 아단성의 위치를 둘러싸고 서울의 아차산성이라는 주장과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아차산에는 온달이 마셨다는 온달샘이 있고 충북 단양에는 온달동굴과 온달산성이 있다. 각기 향토사 연구단체의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 난무하지만, 여기서 그를 확정시킬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가슴에 따뜻하게 남아 숨쉬는 온달의 이야기를 전해 내려오는 대로 받아주면 흡족하지 않을까 한다. 큰 자연 바위에 약간의 인공을 가미한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