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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신니면 원평리 미륵불 앞에 있는 석등대석입니다. 석재의 조합으로 보아 하나의 석물이 아닌 여러 석물이 조합되어 있는 느낌입니다.기단부와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석물에는 앙련과 복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제단(祭壇)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성리 능골 강장자의 집터입구에 거북바위가 하나있다. 이 거북바위의 머리는 충주.주덕간 도로 건너편인 노계마을쪽을 향하고 있고 꽁무니쪽은 강장자집터를 향하고 있다. 이 거북바위가 노계마을쪽의 재물을 먹고 강장자 집터를 향하여 변을 보므로 노계는 못살게 되고 강장자는 부자가 되였다고 한다. 거북바위에 전하는 전설은 가까운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평강채씨거북돌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거북이는 장수와 부의 상징으로 민초들의 바램과 더불어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그래서 노계마을 사람들과 강장자마을 사람들이 서로 거북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며 부자가 되기를 빌었다고 한다. 거북바위는 지금은 마을표지석 옆으로 옮겨져 있다. 원래 거북바위는 장자동터 큰 느티나무 옆에 있었다고 한다.그때는 ..
오랫만에 대곡리 석포마을을 찾았습니다. 석포마을은 천안전씨들의 집성촌입니다. 마을입구에는 전오석의 효자문과 함께 비석2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효자문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 방문에 살펴보니 효자문의 지붕을 새로 해 놓았습니다. 올바른 기와는 쓰지 않았어도 무너지려고 하여 비닐을 덮어 놓았던 에전의 모습에 비해 보기는 좋습니다. 전오석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원대곡에 있다.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
신니면 학성리 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이국헌은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다.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이여연(李汝淵)이다. 이국헌은 1660년(현종 1) 증광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1년(숙종 7) 금산군수로 재직하며 선치(善治)하여 포상을 받았으며, 1691년(숙종 17) 충주목사로 있으면서 주치(州治)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의창(義倉)인 양진창(揚津倉)을 호조의 승낙을 받아 주치와 금천(金遷)으로 옮겼다. 1693년(현종 19) 목사 윤가적(尹嘉績)과 함께 충주의 아전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혐의자 여섯 사람을 가두고 서울로 압송..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선조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미륵석불입니다.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습니다. 머리에 팔각의 보개를 얹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팔각의 넓은 보개는 석등의 옥개석을 연상하게 한다. 보개의 아랫면 가장자리에는 낙수 홈이 선으로 음각되었으며, 중앙에 원형으로 돌출부를 두었다. 이 돌출부가 불신의 머리에 닿아 있어 마치 육계처럼 보인다. 머리는 나발이고 얼굴은 넙적하여 풍만하다. 눈은 반개하고 있고 입술은 도톰하며 턱 아래에 이중턱을 표현해 후덕함을 나타내고 있다. 귀는 길게 표현해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체보다 어깨가 넓어 당당한 느낌을 주..
신니면 학성리 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85년 단위단지에서 쌀 증산이 최고였으므로 최우수상을 받은 기념으로 학성마을 주민들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세운 기념탑입니다. 기념탑에는 85최우수쌀대단위과학영농단지수상기념탑( 85最優秀쌀 大單位科學營農團地受賞記念塔)이라고 써있으며 중원군 신니면 학성단지(中原郡 新尼面 鶴城團地)라 하여 지정당시의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불견리(不見里)와 학성리(鶴城里)의 이름을 따서 견학리(見鶴里)라 하였다.견학리는 일찍이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가의 양옆 너른 들에 형성된 마을로,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불견리·학성리·마제동(馬蹄洞)과 주류면(周柳面)의 창전(倉田)1리 일부를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