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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 석조 보살좌상. 성불사 석불좌상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의 성불사에 있던 불상으로 현재 충주박물관 야외전시실로 이전, 전시되고 있다. 불정면은 행정구역상 괴산군에 속하지만 옛 충주에 속했던 지역이다. 높이 98㎝인 성불사 석불좌상은 전면에 덧칠을 하고 손목 이하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다. 머리는 큰 편으로 원통형 보관을 썼으며 이목구비는 마멸이 심하여 어렴풋이 보일 뿐이지만, 코는 작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다. 어깨는 당당하고 목에 장신구를 표현하고 있다.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도식화된 평행 사선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등 ..
충주박물관 제 1전시실 뒷쪽으로 가면 석탑부재와 문인석과 비석등이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봉산 표지석입니다. 몇 번을 다녀간 곳이지만 자세히 보질 않으면 알수가 없습니다. 표지석의 반 정도는 파손되었습니다. 봉산(封山)은 금산(禁山)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즉 금양(禁養)된 곳 자체를 뜻하기도 하였다. 봉산에는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고 포의(胞衣 :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胎封封山), 황장목만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 밤나무재목을 생산하기 위한 율목봉산(栗木封山) 등이 있는데, 이 기능을 보아 봉산은 특수한 목적으로 정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산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를 하였다. 1436년(세종 18)의 기..
문바위에 대한 유래. 고려시대에 이곳에 문바우(바위)가 있어 문바우고개라 불리기 시작한 이 고개는 부근에 목화밭에서 목화따던 처녀를 스님이 데리고 문바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인가문(人家門)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구렁을 인가문골이라고도 했다. 서쪽에 절이 있어 많은 스님이 왕래하였으며 부근에 절에 대한 전설이 많다. 서기 1612년(광해 4년) 해평윤공 (휘 성임)께서 광문병과에 합격한 후 한림삼사를 역임한 뒤 보덕공을 제수받고 낙향 중 인가문 고개를 넘다 목이 말라 사경을 헤메던중 마침 조그마한 샘물이 있어 기갈을 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여 그 후 이 고개를 윤갈미(尹渴迷) 또는 윤갈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문바위는 서기 1970년 도로공사로 매몰되었던 것을 2000년 초에 동민이 합심..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석탑. 창룡사는 충주시 직동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선각왕사 혜근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 서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한 조선 후기 기록에 창룡사가 전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70년경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창룡사 등을 헐어 불타 없어진 충주 관아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1984년 충주 관아 건물을 중수할 때 명문 기와를 통하여 확인되기도 했다. 창룡사 다층 청석탑은 앞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창룡사..
충주시민들에게는 창룡사라는 이름보다는 남산절이라고 더 불리우는 사찰입니다. 범바위로 불리던 호암동에서 고든골(직동)로 들어서면 만날수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숨쉬는 곳입니다. 남산절 올라가는 계곡에 가재가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위를 뒤집기만 해도 나오는 가재잡는 재미에 많이도 찾은 곳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법주사의 말사. 남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靑石塔) 등의 유물로 보아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절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작성된 「중수기」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