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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풍현감 서유돈의 선정불망비이다. 서유돈이 1798년 사망한 후 그 이듬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돈 선정비가 위치한 수회리는 1476년(성종 7) 이후 연풍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충주목과의 현계(縣界)에 해당되는 곳이다. 다만 서..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사미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때 사미리의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李喆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미리 주민들이 임오(壬午)년(1942) 8월에 건립하였다. 영덕삼거리에서 장호원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을 이용하여 앙성면 용포리 방향으로 진입하여 주유소를 지나 우회전하면 사미리로 들어간다. 사미리 사미마을 입구에 수령 200~300년 된 느티나무에 못 미친 지점의 오른쪽 논둑에 이철훈 기념비가 있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대석은 93×60×5㎝, 비신은 42.5×24×88㎝이며, 지붕돌은 65×43×30㎝의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비제는 6×5㎝의 해서체로 ‘사미동구장 이참봉철훈기념비(沙美洞區長李參奉喆薰記念碑)’라 음기하였고, 양옆..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1919년의 만세운동 유적비. [건립경위] 1919년 4월 1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을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시위 주동 인물 8명(단경옥, 이희갑, 이강렴, 손승억,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우와 사당을 혼동하고 있다. 둘은 조상 위패를 모시고 제사만을 지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름에서 보듯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형적으로 보면 '집우'(宇) 자는 처마가 길게 나온 집을 의미한다. 반면 '집당'(堂) 자는 흙토(土)가 들어간 것에서 보듯, 흙을 쌓아올려 만든 집을 말한다. 따라서 보다 공적인 인물이 배향됐을 땐 '사당'보다 '사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주덕에서 충주 방향으로 달리다 달천다리 건너기 전 5백미터 쯤에서 우회전을 하면 용관동 한남군(?~1457, 본명 李王+於) 사우에 도달할수 있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750년 처음 건립됐고, 1920년에 중수했다. 사육신과 마찬가지로 단종복위를 꾀한 종친이 여섯 명이 있다. 안평, 금성대군..
이석호 불망비는 풍덕마을입구 방풍림이 있는 제내리 306번지에 있다. 1906년에 방풍림을 조성하고 방풍림계를 창시한 이석호[1866~1922]의 기념비이다. 비문은 전면에 ‘방풍림창설계장 참봉이석호 영모불망비(防風林創設契長 參奉李錫浩 永慕不忘碑)’ 라 하고, 양옆에 ‘종수차허..
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 대원사에 있는 고려 후기 철불좌상.충주 철불좌상은 충주시 지현동 587-12번지 충주공업고등학교(구 충주공업전문학교) 옆 노천에 방치되었는데,관아공원(구 중원군청) 내로 옮겨졌다가 1959년부터 대원사 앞뜰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서 그런지 광배와 대좌, 두 손이 없어졌다. 대원사로 옮겨져서도 별도의 전각 없이 대웅전 앞 오른쪽 담장 옆에 안치되어 있다가 1982년 중원 문화권 개발사업의 하나로 충주시의 보조를 받아 대웅전 오른쪽에 단칸의 보호각을 짓고 봉안하게 되었다.보호각을 만들어 봉안하면서 두 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웠다.그러나 1994년에 대원사 화재로 보호각은 소실되었고 불상은 충주박물관으로 잠시 이전 관리되었다.1998년에 대원사 극락전을 새로 지은 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