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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 (305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조선 영조(英祖) 12년(1736) 경율(景栗) 전후회(全後會)가 마을입구에 서당을 짓고 자기의 호를 따서 경율당(景栗堂)이라 하였다. 경율 전후회는 율곡(栗谷) 선생의 학덕을 숭모하여 "율"(栗)자를 즐겨 썻다고 한다. 경율당은 후손들의 학문 연수와 인격수양의 도장으로 활용했으며 용궁..
이 후율당은 1588년 선조 21년 중봉 조헌선생께서 율곡, 이이를 사모하여 자기가 율곡의 후학임을 자처하고 자기의 호까지 후율이라고 하였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안내면 용촌리 밤티 마을에 서당을 짓고 이름을 후율당이라 하였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봉선생은 이 후율당에서 의병을일으켜 1,700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의 승병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는 공을 세웠다. 후율당의 상량문에는 「後票靜庵孝子 退溪學一 昭昭在石潭任辰潭義兵多出是堂」이라 쓰여 있어 이곳에서 많은 의병이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후 본 후율당이 헐어져 없어진 것을 선생의 제자들과 후손들이 다시 지었다가 1864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1977년 정화사업으로 완전 보수하였다. 이 건물은 목조 기와집이며 정..
정방리 정곡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정곡마을 회관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 정실이 마을 한 가운데에 최씨 열녀문이 있다. 옥천에 거주하는 유림들이 그의 정열로 나라에 상소하여 1883년(고종 20년) 2월 열녀로 정려하여 목조 2평의 열녀문을 세워서 전하고 있다. 열녀 ..
이 다리는 신라 문무왕때인 660년경에 만든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본래는 군북면 증약리 경부선 철도 자리에 있었으나 철도공사로 인하여 증약마을 입구로 옮겼으며, 그 후 수해로 인하여 2001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다리가 있던 증약마을은 찰방역이 있었던 곳으로 왕래가 ..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이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비보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새로이 보충해 놓은 것이다.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