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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5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의문화재단지내 비석군에 있는 관찰사 여흥인 민치상의 불망비입니다.관찰사민공치상영세불망비(觀察使閔公致庠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신미년(辛未年,1871년)입니다. 민치상은 1825(순조 25)∼1888(고종 25). 조선 말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사호(賜號)는 하당(荷堂).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전강(殿講)에서 수석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849년 홍문관수찬에 임용되었다. 1850년 8월 진하사은 겸 세폐사(進賀謝恩兼歲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56년(철종 7) 홍문관부응교·예방승지, 1859년 성균관대사성, 이듬해 홍문관제학을 ..
문의문화재단지 비석군에 자리하고 있는 반남인 박재관의 영세블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순찰사박공제관영세불망비( 巡察使朴公齊寬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을유년(乙酉年,1885년)3월로 되어 있습니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고종실록22권, 고종 22년 3월 4일 계묘)경기감사 심상훈과 충청감사 박제관을 서로 바꾸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그 당시 이임하면서 세운 비석입니다. 승정원일기 2920책 (탈초본 134책) 고종 21년 2월 20일 병인 32/32 기사 1884년 光緖(淸/德宗) 10년 ○ 甲申二月二十日午時, 上御重熙堂。 忠淸監司入侍時右承旨朴周陽, 假注書金龜燮, 別兼春秋尹相衍·金貞均, 忠淸監司朴齊寬, 以次進伏訖。 上曰, 史官分左右。 命監司進前, 齊寬進前。 上..
문의문화재단지내에 있는 청송인 심승택의 비석입니다.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에 산재되었던 비석들을 모두 모아 문의문화재단지에 비석군으로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비석에는 관찰사심공승택영세불망비(觀察使沈公承澤永世不忘碑) 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계해년 (癸亥年)3월로 적혀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승정원일기 2621책 (탈초본 125책) 철종 10년 11월 16일 신사 22/24 기사 1859년 咸豊(淸/文宗) 9년 忠淸監司沈承澤疏曰, 伏以, 臣頃陳病實, 獲解銓銜, 感戴恩造, 守分調將, 千萬不自意, 伏奉除旨, 以臣爲忠淸道觀察使者, 悸恐震越, 益莫省攸措也。 未敢知聖上奚取於臣, 內而淸選, 外而重藩, 華誥聯翩, 殆若非此莫可者然。 심승택은 조선후기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
청주시 용암동, 금천동, 탑동을 흐르는 개울에서 금을 발견하였다는 전설. 조선 후기 철종 때 한 나그네가 걸어서 한양을 가고 있었다. 청원의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 당도하였다. 개울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신을 벗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며칠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였다. 발을 물에 담근 채 괴나리봇짐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새소리에 놀라 잠이 깨니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고, 까마귀 떼가 벌겋게 물든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언짢은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머리를 흔든 뒤에 물속에서 발을 빼려고 물속을 보았다. 물에 잠긴 두 발은 곱고 하얀 모래가 덮여 있는데..
청파선생의 사적비는 미원시내 약물내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공은 1919년 12눨 23일생으로 이 고장에서 출생하였다.지역발전을 위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법원의 지방행정주사로 그 후에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을 하였습니다.미원면 노인회장등 을 역임하였으며 그 후 창주향교 전교를 역임하는 등 지역발전과 더불어 지역의 유림활동에 지대한 공로가 있어 지역주민과 유림들의 뜻을 모아 비석을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