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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공산성 선정비 (2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공산성 선정비에 있는 여흥인 민치서의 선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판관민후치서영세불망비(公山城 判官閔侯致序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있습니다. 민치서는 여흥인으로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여흥(驪興). 1864년 공주판관(公州判官), 1871년에는 상주목사(尙州牧使)가 되었다. 1880년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이 되고, 1882년에는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이어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885년에는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고, 1886년 2월에는 공조판서가 되었다. 1887(고종24)년 5월에는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듬해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가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민치서 [閔致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승정원일기 2682책 (탈초본 127책) 고종..

남일우(南一祐)는 조선후기 홍문관부제학, 경상도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본관은 의령(宜寧). 뒤에 남일우(南一愚)로 개명. 자는 백경(伯敬). 남태순(南太淳)의 손자이며, 나주목사 남병선(南秉善)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3년(고종 10) 성균관대사성,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79년에는 그해의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충주·연풍·부여·청안 등지의 관청의 부실한 재정을 일제히 정비하였고, 조세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충청우도에 산재한 주사읍진(舟師邑鎭)의 수토군(搜討軍)과 수영(水營)의 난후군(欄後軍)을 혁파하여 군사제도를 정..

공주 공산성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공주판관을 지낸 이원필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판관이후원필영세불망비(判官李侯源弼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읍니다.이원필은 "헌종실록" 1847년(헌종13년)10월에 어사의 서계에 따라 징계를 받았음이 기록되어 있으나 어떤 사안때문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공주시지] 승정원일기 2457책 (탈초본 120책) 헌종 12년 12월 22일 계유 29/52 기사 1846년 道光(淸/宣宗) 26년 金有淳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金有淳爲司饔主簿, 李源弼爲公州判官, 李東喬爲金山郡守, 朴泰浩爲昌平縣令, 沈明奎爲魯城縣監, 金長遠爲尙瑞直長, 趙埴爲典牲副奉事, 趙用夏爲咸從府使, 李宓熙爲順川郡守, 尹肯鎭爲鎭安縣監。 승정원일기 2466책 (탈초본 120책) 헌종 13년 10..

공주 공산성 입구에 자리한 선정비중에 하나인 관찰사 김병시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김공병시영세불망비(觀察使金公炳始永世不妄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비의 개석은 훼손된듯 합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김병시가 공충도관찰사의 임무를 마치고 이임한후인 을해년7월(1875년)이다. 김병시는 1870년 공충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고종실록"에 의하면 김병시는 관찰사 부임이 후 목화가 흉작이란 사실을 보고하고 또한 환곡문제의 해결방안을 건의 하고 조령의 적도를 탐문했던 활동상이 보이며 정사를 잘 베풀어 백성들이 그의 연임을 바라니 임기를 1년 늘린 기록이 보인다.[공주시지] 승정원일기 2757책 (탈초본 129책) 고종 7년 윤 10월 13일 을해 9/11 기사 1870년 同治(淸/穆宗) 9년 ○ 有..

공산성 선정비군내에 자리하고 있는 판관 민두호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판관민후두호영세불망비(判官閔侯斗鎬永世不妄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광서임오년(1882년)이며 민두호는 임실현감 수원판감 재령군수를 지내다 1879년 공주판관을 지내고 서흥부사로 이임하였다. [공주시지]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 조선일보 (chosun.com)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251. 선정비에 은폐된 구한말 부패 시대 www.chosun.com 민두호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여흥 민씨 세도가의 한 사람으로, 춘천부유수를 지내면서 백성을..

공산성 금서루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선정비내에 자리하고 있는 정지현의 청간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우영장정후지현청간불망비(右營將鄭侯志鉉淸簡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정지현은 조산고종시대의 무관관료로 평안도 경기도 서해안지역에서 자주 출몰하던 이양선과 대립할때의 해당지역의 관료로 방어하였고 1866년에 그 치적을 인정받아 황해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공주시지] 승정원일기 2616책 (탈초본 125책) 철종 10년 6월 25일 계해 38/51 기사 1859년 咸豊(淸/文宗) 9년 ○ 尹致誠, 以兵批言啓曰, 同知中樞府事李敏敎, 僉知中樞府事宋寅玹·朴枝藩, 五衛將李海旭·崔致國·盧仁珪, 忠翊衛將康在鈺·金龍弼, 忠壯衛將李正烈, 俱以病難供職, 呈狀乞遞, 五衛將趙謙熙, 前任忠淸監營中軍, 時在任所, 上來間該廳番次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