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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388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망촛대 사이로 금계국 어우르는 조금 이른 오후홀딱벗구새도 울고 멧비둘기도 화음을 넣고인적없는 보살사 부도전에 기다림만 가득하다. 찾는 이 바라지 않치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목 길게 기다리는 마음은 그리움만 고프다. 2025.06.05, 보살사 부도전.

진천읍 연곡리 삼층석탑(鎭川邑 蓮谷里三層石塔 ) 진천읍 연곡리 삼층석탑(鎭川邑 蓮谷里三層石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연곡리 삼층석탑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김유신길 641] 비선골마을의 폐사지에 신축된 보탑사 지장전의 좌측에 모셔king6113.tistory.com 진천읍 보탑사에 있는 연곡리 삼층석탑입니다.부처님 오신날 꽃공양 받으며 잘 계시네요. 진천 연곡리 삼층석탑鎭川 蓮谷里 三層石塔 연곡리 삼층석탑은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연곡리 비선골 마을의 폐사지에 신축된 보탑사 지장전의 좌측에 모셔져 있다.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너 졌던 석탑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결실된 부분이 많다. 규모가 작은 탑..

이 정문(旌門)은 효근리 이동(梨洞)마을에 있는 효자 옥구인 장후량의 정려로 영조 2년(1726)에 내린 것이다.장후량은 옥구장씨(沃溝張氏)로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낸 이암(梨菴) 장륜(張倫)의 9대손이다.그의 어머니 허씨(許氏)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입에 넣으니 그 효과가 좋아져 수 차례에 걸쳐 회생하게 하였다.효자문 안에는 효자학생장후량지문(孝子學生張後良之門)이라고 쓴 편액이 있다. 현재의 의학상식으로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효의 극치를 보여준 것입니다.단지주혈이라는 부모향한 효심의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남으로서 본이되고 효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다 보니 어쩔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보여주기식의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청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송월대사의 승탑입니다.승탑에는 송월대사지탑(松月大師之塔)이라는 당호가 새겨져 있습니다.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예전 청주진영순교지 자리에 세워진 청주제일교회의 모습입니다. 청주진영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다섯 진영중 하나로 천주교 박해 때 마다 신자들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사형 판결을 내리던 관청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진영에서 천주교 신자인 복자 오반지 바오르가 "만 번 죽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할수 없소"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종 최용운 암보르시오,전 야고보,김준기 안드레아드도 1866-1868년 이 곳에서 순교하였다.1892년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북 장로회 소속 민노아선교사는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병인박해의 순교역사를 기억하고자 1905년 남문밖에 있던 청주제일교회를 청주 진영 순교지로 이전하였다. 2017년 천주교 청주교구는 청주제일교회의 협조와 배려로 순교지 기념 표..

청원구 외남동 마을길 끝에 접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군범(君範)이며,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채영용(蔡領用)이며, 어머니는 유씨(柳氏)로 유승주(柳承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어머니가 『등왕각서(藤王閣序)』를 말로써 가르치면 한번에 암송하는 재질이 있었다. 8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였고, 또한『상서(尙書)』기삼백(朞三百)의 주(注)를 해석하였다고 한다.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 들어가서는 스승으로부터 남다른 총애를 받았으며, 동문인 한원진(韓元震), 윤봉구(尹鳳九), 이간(李柬), 윤혼(尹混) 등과 친교, 학문을 강론하였다. 뛰어난 학행으로 암행어사 황구하(黃龜河)와 도(道)의 관찰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