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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중생의 수준에 알맞게 불법佛法을 설명하여 모두 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표식으로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모은 아미타 부처이다. 수명을 무한히 늘려주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모두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게 해주는 부처이다. 춘천박물관 야외전시장인 현묘의 정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이홍근씨가 기증하였습니다.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사지에서 석굴발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발견된 불신입니다. 불신의 하체와 불두는 파손되어 불신만 있습니다. 불신에는 화려한 목걸이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손에는 약합이 들려있어 약사불로 추정이 됩니다.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grandculture.net)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변천]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 chungju.grandculture.net
날씨가 덥다. 더운 와중에도 벌판에 모들은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오랫만에 다시 찾은 남하리 석불은 언제나 그렇듯 반가운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민속체험관에서 행사에 앞서 주위를 정리하나 보다 주위가 조금은 산만하니 정리가 한참이다.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군(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群)은 증평 시가지에서 청원군 초정 방면으로 가다 남하2리 미륵마을의 민속체험관 옆에 위치해 있다. 이중 가장 큰 불상은 아랫부분이 땅 밑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으나 현재 땅 위에 노출된 높이는 3.5m이다. 머리에는 관대가 있는 비교적 높은 보관(寶冠)을 썼는데, 두 귀 위에 장방형의 홈이 있어 보관(寶冠)에 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나 보아도 참 듬직하다는 표현이 좋다.가까운 거리에 있는 광덕사 석불..
마을앞에 자리한 나무밑에 있는 돌탑입니다. 자연석을 쌓아 원추형의 돌탑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민초들의 자연을 향한 작은 마음쌓음일겁니다. 옥화리 마을을 지나 커피숍 대경 못미쳐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마을의 풍경입니다. 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하지만 마을 앞의 허한 방위를 막기 위해서나 특정한 모양의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단순 비보물(裨補物)이기도 하다. 다른 신앙 대상물에 비해 풍수적인 비보(裨補)신앙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갯마루나 사찰입구에 지나가는 길손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잡석의 서낭당이나 개인이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으로 쌓..
청천면 창리에 위치한 장기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돌입니다.지금도 이 바위가 자리한 곳의 지명은 장기바위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바위위에는 장기를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장기판 비슷한 모양이 가로세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호울타리도 잘 정리되어 있었고 안내표지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은 관리가 부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차량통행이 빈번한 이차선 도로가에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난 듯 합니다. 예전부터 바위에 손상을 가하거나 하면 화를 입는다고 전해지며 마을사람들은 바위를 신성시 여기며 마을의 수호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선씨들의 재실입니다. 숭모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갈산리로 동네에 접어들면서 동네입구 우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밑인 절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모재(崇慕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숭모재 옆으로는 샌드위치판넬조 관리동이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노(魯)나라 대부(大夫) 선백(宣伯)의 후손인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1382년(우왕 8) 명나라 문연각 학사(文淵閣學士)로서 사신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전라도안렴사가 되어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격퇴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寶城)으로 은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