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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계곡 첨성대(靑川面 華陽溪谷 瞻星臺)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첨성대(靑川面 華陽溪谷 瞻星臺) 물줄기를 따라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화양3교라 이름붙은 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다리 바로 위쪽에 각진 바위가 층층이 쌓여 높직한 대를 이룬 것이 제5곡이다. 별 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일 king6113.tistory.com 화양구곡의 제5곡인 첨성대瞻星臺의 암각자 입니다. 화양구곡이란 명칭은 송시열의 제자 권상하가 송시열의 유지를 받들어 명명하였으며 민정중이 각자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첨성대는 우암의 숭명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면 고정불변의 자리에 있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뭇 별들이 공전을 하듯 즉 임금의 덕화가 천하에 미치고 감화를 받아 응집됨을 강조한것이다.논어의 위정爲政의 원리..
화양구곡의 5곡인 첨성대 밑의 냇가의 암벽에 각자되어 있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각자옆에 새겨진 각자로 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각자를 새기게 된 이유를 각자한 내용입니다.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어필로,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 입니다. 비례부동의 오른쪽에 숭정황제어필崇禎皇帝御筆이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습니다 陪臣閔鼎重奉至 與宋時烈等謹拜手 稽首摸勒時四十七年甲寅四月日也 (배신민정중봉지 여송시열등근배수 괴수모륵시사십칠년갑인사월일야) 배신陪臣이라 함은 신하의 신하. 곧 제후의 신하. 제후의 신하인 대부(大夫)가 천자를 대할 때의 자칭하는 말입니다. 47년은 숭정47년을 말하는 것으로 1627년 숭정1년을 기준하면 1674년, 갑인년 입니다. 비례부동은 송시열이 1674년 4월..
청천면 화양계곡 운영담.(靑川面 華陽溪谷 雲影潭)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운영담.(靑川面 華陽溪谷 雲影潭) 운영담(雲影潭)이라 한다. 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하늘을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 못이라 하니 얼마나 멋진가? 소나무와 함께 있는 층암절벽의 모습이 구름과 함께 잔잔한 물에 king6113.tistory.com 청천면에 위치한 화양구곡의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입니다. 구름의 그림자가 소에 비춘다는 뜻일겁니다. 암석사이사이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의 생명력이 참 좋습니다. 가을에 단풍이 진 운영담은 그 풍취를 더욱 빛낼것 같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화양구곡중 학소대와 더불어 참 압권인 풍경입니다. 임상주(任相周1710~1791)는 자신이 쓴 만흥영화양구곡漫興詠華陽九曲에서 제..
청천면 화양동 9곡인 파천가에 있는 암석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승정원 일기에 의하면 1811(순조11년)에 공충도관찰사로 제수되었습니다. 관찰사시절 아들과 함께 밑에 관속들과 화양구곡을 찾은 듯 합니다 각자시기는 숭정4신미년(1811년) 가을입니다. 1763(영조 39)∼1817(순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유량(孺良). 목사 원명구(元命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원경하(元景夏)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원인손(元仁孫)이며, 어머니는 남유상(南有常)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도기(到記)의 제술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전시에 직부되고, 이어 증광문과에 병과로..
화양구곡의 제 9경인 파천이다.다른말로는 백석(白石)이라고도 불리운다. 넒은 평평한 백석위에 흐르는 물이 경관을 더헤 주고 있다.용의 비늘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양동계곡은 화양천 맑은 물을 끼고 산 속으로 10리쯤 뻗어 있다. 옛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일컬었다. 훤칠하고 깨끗한 바위들은 벽으로 치솟거나 너럭바위로 가로누웠고 옥 같은 물은 그 위로 미끄러진다. 양쪽 산기슭의 소나무들은 층층이 붉은 줄기를 드러내고 싱싱하게도 자랐다. 화양천 물은 흘러 달천으로 가고 달천 물은 다시 남한강 줄기에 보태지니 이곳 물은 한강까지, 서해까지 간다. 송시열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 골짜기에 들어앉아 글을 읽고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자신을 주자에 비유했던 그는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볼 만한 곳 아홉 군데에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華陽九曲)이라 했다. 구곡중 제3곡인 읍궁암입니다. 화양구곡의 대부분은 경치나 모양의 모습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