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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4 (3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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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고인돌입니다. 청주시 남일면 황청리에 있던 고인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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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감는다 세월이라는 그늘속에 반쯤 몸을 기대고 오늘도 혼자 세월을 깁고 있다. 감각없는 생각은 아픔을 외면하고 혼자만의 것인양 자만(自慢)의 우산을 편다. 내 어린날의 아픔이 바람이 되어 겉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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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다시 탑리를 찾았다. 지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동네에 탑이 있어 탑골 또는 탑리로 불리운다고 한다.지금이야 탑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그 당시의 탑리에 있던 절의 흔적을 전해주는것은 오롯히 앉아 밭한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탑리 비로불만 남아있다. 민초들의 서러움 또는 기쁨을 같이하며 자신의 모습 온전히 내주고 얼굴도 알수없이 훼손되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은 당당하다. 장대리에 있던 약사불도 같이 모셔 놓으니 두석불이 크기도 엇비슷하고 다정한 친구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창리 오창지구대 화단에 있던 장대리석불이 이곳으로 이전되였다. 장대리석불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장대리 석불은 훼손이 심하다. 손에 들고 있는 약합으로 보아 약사불이다.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청원 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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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모정리(毛亭里)와 사점리(沙店里)에서 ‘모(毛)’자와 ‘점(店)’자를 따 ‘모점(毛店)’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앙암면(仰岩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정리·사점리·동막리(東幕里)·가래골[楸洞]·학미골[鶴美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모점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가 되었다. 모점리의 서쪽에는 오갑산[609m]이 높이 솟아 있고, 주변의 여러 산에서 흘러든 물이 앙암저수지에 모여 하류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물은 다시 목미천을 합류하여 강천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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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어린 시절 기억이 주욱 이어지지 않고 중간중간 나는걸 보니 아마 국민학교가기 전이지 싶다. 집에서 10여리 떨어진 탄금대라는 곳을 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장마가 진 후 물이 넘쳐서 이루어진 모래밭이 넓게 펼쳐진 곳이 있었다. 그 모래 밭에는 땅콩농사가 잘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동생은 업고 나는 걸리고 버스를 타고 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커다란 대바구니를 들고... 그 곳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땅콩수확이 끝나고 휑한 남의 땅콩밭에서 엄마는 그늘에 동생을 뉘워 놓고 모래밭에 호미질을 하시며 남이 땅콩수확을 하다 미처 다 캐지 못한 땅콩이삭을 주우셨다. 한참이고 쭈그리고 주우시면 꽤 많은 땅콩이삭을 주울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땅콩이삭을 주워온 날이면 온 집안에 고소한 땅콩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