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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4 (5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주쪽에서 현암리 쪽으로 가다보면 현암리 못미쳐 좌측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묘소가 있습니다. 통정대부로 이조참의에 증직된 고령인 신득치의 묘소입니다. 무덤은 호석을 둘렀으며 문인석과 망주석이 후보되어 있습니다. 무덤 밑에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합니다.

청주쪽에서 현암리 쪽으로 가다보면 현암리 못미쳐 좌측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묘소가 있습니다. 통정대부로 이조참의에 증직된 고령인 신득치의 묘소입니다. 무덤은 호석을 둘렀으며 문인석과 망주석이 후보되어 있습니다. 신,구비석이 있으며 신비에 새겨진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부군의 휘는 득치(1592-1656)요 자는 평보다. 신씨는 고령에서 나왔는데 멀리 선대의 차레는 고려때 휘 성용이 비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이 일어섰다. 관직이 검기군기감이다. 사세를 지나 예의에 이르러 판서가 되었다. 휘 덕린이 절개와 충의가 뛰어나 그 가문을 이어서 열었으며 또 사세에 이르러 본 조정 조선에 영의정 문충공 휘 숙주가 삼대조에 걸쳐 재상을 했으며 네 종의 공훈에 책봉되어 더욱 빛났다. 문충공이 내자사정을..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 지역으로 조선 영조 후반(1750-1776)에는 용동리와 손목포리만이 있었으나 헌종대(1845년경) 관곡이 새로이 형성되 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관곡리가 상관곡과 하관곡으로 분리되어 용동리, 양곡리, 화원리, 손목포리로 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화원리의 일부를 손목포리의 일부를 종암리로 넘겨주고 용동과 관곡의 이름을 따서 용곡리라 하여 미원면에 편입되었으며 자연부락으로 손목(주막거리), 양골, 해평, 용골이 있음. 현재는 1,2리로 분구되어 있습니다.고령신씨 시조 검교군기감 신성용의 11대 손 영성군파 이조참판 동양 재난공이 연산군때 양골에 자리잡은 이래 용골, 손목포, 해평에 이르기까지 고령신씨가 많이 살았는데 현재는 34세대 정도가 살고 있다. 양골..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긴밭재’는 1차적으로 ‘긴밭’과 ‘재’로 분석된다. ‘긴밭’은 다시 ‘긴’과 ‘밭’으로 나뉜다. ‘긴-’은 ‘길다[장(長)]’의 관형형이니, ‘긴밭’은 ‘길게 늘어진 밭’으로 풀이된다. 또한 ‘재’는 ‘고개’이니,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그냥 ‘긴밭재’라 부른 것이다. 이 마을은 달리 ‘진밭재’로도 불리는데, 이는 ‘긴밭재’의 ‘긴-’이 구개음화에 의해 ‘진-’으로 바뀐 결과이다. ‘긴밭재’는 달리 ‘장전(長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긴밭재’에서 ‘긴밭’만 한자로 옮긴 결과이다. 성화동의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다. 이는 성화동과 개신동의 경계에 해당한다. 서부도로를 따라 오송 방향으로..

미원면 수산2리 원미마을에 있는 마을표지석입니다. 검은 자연석에 수산2구(壽山2區) 원미라고 써있습니다. 수산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의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판리, 송교리, 원산리와 외삼곡리, 대판리, 수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곡과 원산의 이름을 따서 수산리라 하였다. 1987년 행정리동 분리로 너더리, 숫골, 스실을 수산1리로, 원미를 수산2리로 분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산리는 남양홍씨 시조 고려태사 홍은열의 23대 익산군파 석무공이 수산에 자리잡은 이래 너더리, 숫골, 생골, 밤실에 이르기까지 남양홍씨가 많이 살았는데 현재 수산리에는 8호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남양홍씨 사당인 남양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더리 : 숫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동판(東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