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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4 (5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현암리에 있는 광주인 얀윤행의 묘지입니다. 묘소에는 상석과 함께 문인석과 망주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근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호석도 둘렀습니다. 주위에는 1914년에 창건하여 2003년 12월에 다시 개건한 광주안씨의 재실인 안현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암리에는 광주안씨들이 많이 세거 했지만 지금은 몇호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안윤형은 인조 17년(1639년)에 식년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자는 자중이며 본관은 광주이며 서울에 거주하였습니다.아버지는 토산현감을 지낸 통훈대부 안시성이며 처부는 고령인인 신득치입니다.
기암서원은 숙종25년(1699년) 청원군 오창면 기암리에 설봉 강백년(1603-1681)선생을 받들어 제사 지내고 후학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지방의 선비가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그리고 기암리는 강설봉 선생이 여러번 머무르며 후진을 가르치던 연고지었으므로 이 곳에 서원을 세우게 된것이다. 이 기암서원에 금암 오숙(1602-1675)선생을 추배하게 된것은 1811년(순조11)10월 기암사원 철향때 서원에서 논의하여 이 고장의 여러 서원과 사원에 금암공을 기암사원에 추배할것을 요청하는 통유문을 보낸바 있다. 당시 서원의 설립이나 추배문제는 그 지방의 각 서원의 유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고 제수물도 관아에 품문을 보내어 보조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금암선생유고집의 향기암서원시다사통유문에 의..
낭성면 갈산리 기암서원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성균진사를 지낸 오석창의 묘지입니다. 비석은 1977년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망주석과 함께 무덤에는 호석을 둘렀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성균진사오공석창지묘( 成均進士吳公碩昌之墓 )라고 적혀있습니다.
현도면 죽전리에 전해져 오는 지만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옥포국민학교를 가려면 징검다리등을 이용해서 학교를 가곤했습니다. 물론 다리가 놓이기전에 일입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 되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개울건너에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였지요. 학교를 무리하게 가려고 물이 넘치는 곳을 건느려다 인명사고가 나곤 했습니다. 1965 년에 이 곳 옥포국민학교 5,6학년 학생 65명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방문한 청와대에서 당시 옥포국민학교 5학년 1반 안봉춘군과 당시 청와대뜰에서 만난 박지만군과 편지를 주고 받다가 이 곳에 이야기를 전하며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쓴 글을 박지만군이 읽고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하여 청와대에서 보낸 금일봉과 함께 충북도 차원에서 다리를 놓고 다리..
율리(栗里)는 본래 조선시대때 청안현(淸安縣) 남면(南面) 지역에 속했다. 정조 13년(1789)에 간 행된『호구총수(戶口總數)』기록 에는 충청도(忠淸道) 청안현(淸 安縣) 남면(南面)에 27개의 동리 (洞里)가 있었다. 그 중에서 현재의 율리와 관련된 마을로는 삼기리(三岐里), 율치리(栗峙里), 봉천리(奉天里) 등 3개리가 있었다. 삼기저수지를 둘러볼수 있도록 목조데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족나들이로 참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