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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4 (5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중앙리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소재지로 읍내면(邑內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근동(馬斤洞)과 사동(蛇洞), 눌곡리(訥谷里)와 평창리(坪昌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회인읍내의 중앙이 되므로 중앙리(中央里)라 하고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중앙리 서쪽 게곡인 망골로 가는 입구에 있는 서낭당입니다. 돌탑이 근간에 2기 쌓여 있으며 서낭목의 뿌리가 바위를 안고 있다고 하여 신성시 되고 있다고 합니다. 동네주민들의 기도처로 사용되던 곳이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망골에는 망월사라는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 곳 망월사에 있던 석조약사불은 수한면 차정리에 위치한 연화사라는 가정집 절로 옮겼습니다.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지역으로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世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세촌리(世村里)라 해서 회북면(懷北面)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행정구역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음. 느리-울(世村里)[마을]본래 이름은 ‘누리울’이 변하여 ‘느리울’이 되었음. ‘누리’는 ‘세상(世上)의 옛말임.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한다. 바깥-누리울[마을] 세촌리의 중심마을 세-촌(世村)[마을] → 느리울 안-느리울[마을] 바깥느리울 동북쪽 안쪽에 있는 마을 가장-골[골] 바깥느리울 동쪽에 있는 골짜기 개경주-골[골] 바깥느리울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율산리는 면의 동북쪽에 자리하며, 북으로 내북면 신궁리,동으로 내북면 하궁리, 산척리, 남으로 동정·차정·건천리, 서로는 회인면 애곡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동면지역으로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율성동과 산척리 일부와 보은군 수한면 산척리 일부를 병합하여 율성과 산척의 이름을 따서 율산리라 하고 회북면에 편입 하였다가 1983년 행정구역 개편시 수한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은 산자골과 밤성골이 율산1리와 2리로 나뉘어 있다.지명으로는 밤성 골고개, 배내미, 범산, 부무골, 불당골,승지골,지경들, 회사땅,할미당등이 있다,
장승(長丞)은 마을 또는 절 입구 등에 세운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긴 기둥이다. 이정표 또는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한다. 일반적으로 남녀 한쌍의 모양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남자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씌어져 있으며 여자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씌어져 있습니다. 회인면 신문리 마을입구에 있는 석장승입니다. 석장승은 2005년에 동리 주민들이 세웠습니다. 마을어귀에 느티나무 군락사이에 석장승을 세웠습니다. 무병장수의 상징인 실타래도 두르고 새끼줄도 둘러 주민들의 관심을 먹고 있습니다. 신문리의 지명유래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살무니 또는 신문(新門)이라 하였습니다. 신문리는 피반령 능선을 병풍삼아 자리한 마을로,북으로 청주시 가덕면 수곡리· 내암리,동으로 쌍암리, 남으로 ..
내북면 법주리 구룡산에 있는 약수터입니다. 수량도 풍부하며 식음적합판정도 받았습니다. 구룡산 휴양림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북면 법주리는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洞)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밑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보은군(報恩郡)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으나 1946년 2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 에 편입되었다. 법주(法主. 법줄. 버드리)[마을] 옛날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함. 새 - 터[마을] 음지말 북쪽에 새로된 마을 양지 - 말(陽地村)[마을] 중뜸 서북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 음지 - 말(陰地村)[마을] 중뜸 서북쪽 양지말 남쪽 음지에 있는 마을 조정 ..
신문리의 지명유래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살무니 또는 신문(新門)이라 하였습니다. 신문리는 피반령 능선을 병풍삼아 자리한 마을로,북으로 청주시 가덕면 수곡리· 내암리,동으로 쌍암리, 남으로 고석리, 서로 오동리와 접해있다.본래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을 병합하여 신문리라 하고 보은군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살구나무가 많아 살무니라고 하였다는말도 전해오고있다. 자연마을로는 웃말(감나무골,새말),평짓말,승주골이있으며,지명으로는 가러뱅이골,곤드래골,구댕이골,구영바우,구요골,만근쟁이,뫼서리고개,사태골,속곳이마,오좀분지골,음혈,장고개,중구방아골,홀기비등이있다. 마을입구에 들이 형성되어있다. 2012년에 새로 세운 마을유래비입니다. 마을유래비 몸돌에는 신문리를 빛낸 마을출신들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