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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92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 위치한 순창조씨들의 선조들을 모셔놓은 사당인 칠충사에 있는 비석들입니다. 칠충사에 모신 일곱분의 비석과 함께 칠충사건립에 힌써온 종중회장등의 비석이 한자리에 있습니다. 가까운 마을인 송평리에 순창조씨들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비석과 현판은 따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종(趙悰)은 1437(세종19년)-1506(연산군12) 조선초기의 무관으로서 본관은 순창(淳昌)이다.조신(趙神)의 증손(曾孫)이다.무과(武科)에 급제하여 1467년(세조13년)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원사 조석문(曺錫文)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전공을 세워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주종(追從)되었고 후에 은성군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묘소와 사당(七忠祠)는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에는 충신(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첨지중추부사순창조공종공적비( 忠臣(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僉知中樞副使淳昌趙公悰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기(趙折》1584(선조 17)~1661(현종 2)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안,본관은 순창이다. 충신 조복의 후손이다. 1628년(인조 6) 선교랑으로 있을 때 최여헌이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인 조덕롱과 함게 출전하여 이를 평정하는 데 공훈을 세웠다. 이듬해 오위도총부 오위장에 올랐다.묘는 문광면 광덕리에 있으며 문광면 칠충사에 배향되었다. 칠충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7호로 칠충신은 조신 • 조종 • 조복 • 조반 • 조덕공 • 조덕용 • 조기를 말한다
충신영사원종공신금화사별좌순창조공덕용공적비( 忠臣寧社原從功臣禁火司別坐淳昌趙公德容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덕용(趙德容)은 1564(명종19)-1638(인조16)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윤(汝潤) 본관은 순창(淳昌)이다. 충신(忠信)인 조복(趙服)의 아들이다. 율곡(栗谷)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하였으며 율곡의 아낌을 받아 율곡의 조카사위가 되었다.김천도(金泉道) 찰방(察訪)을 거쳐 금화사(禁火司)의 별좌(別坐)를 지냈는데 1628년(인조6) 최여헌(崔汝獻)이 반란을 일으키니 종질 조기(趙圻)와 함께 참전하여 공을 세워 영사(寧社)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순창조씨들의 사당인 칠충사(七忠祠)에 배향되었다.[참고문헌. 괴산군지] 김천도(金泉道) - Daum 백과 김천도 조선시대 ..
충신(선무원종공신)형조참의순창조공덕공공적비( 忠臣(宣武原從功臣)刑曹參議淳昌趙公德恭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덕공(趙德我》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자는 사원 본관은 순창이다. 한성좌윤 조승의 둘째 아들이며 충신 조복의 종질이다. 괴산군 송평등에서 태어났으며 뒤에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로 옮겨 살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과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율곡의 문하에 있었고 유자(儒者)로 이름이 났다. 또한 마음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재덕과 지모(智謀)가 출중하고 용맹하여,일찍이 붓을 던지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웠다.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올라 선전관(宣뿐官)이 되었다가 호조정랑(戶불1E卽)을 지냈다. 1584년에 부친의 상을 당하여 집으로 ..
충절(불사이군)국자진사순창조공신공적비( 忠節(不事二君)國子進士淳昌趙公紳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신(趙神) 1324(고려충숙왕11)-1402(조선 태조 12)은 고려 말의 진사로서 호는 피세정(避世亭),본관은 순창이다. 문정공 조렴의 아들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건국되자 불사이군( 不事二君 )의 절의를 지켜 1392년 (태조 1) 괴산군 문광면 송평리에 내려와 오마산 밑에 피세정을 짓고 은둔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백이 • 숙제와 안진경의 충절을 찬미했다. 그의 묘소는 문광면 송평리에 있고 문광면 광덕리에 있는 칠충사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