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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92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조기(趙折》1584(선조 17)~1661(현종 2)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안,본관은 순창이다. 충신 조복의 후손이다. 1628년(인조 6) 선교랑으로 있을 때 최여헌이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인 조덕롱과 함게 출전하여 이를 평정하는 데 공훈을 세웠다. 이듬해 오위도총부 오위장에 올랐다.묘는 문광면 광덕리에 있으며 문광면 칠충사에 배향되었다. 칠충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7호로 칠충신은 조신 • 조종 • 조복 • 조반 • 조덕공 • 조덕용 • 조기를 말한다

충신영사원종공신금화사별좌순창조공덕용공적비( 忠臣寧社原從功臣禁火司別坐淳昌趙公德容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덕용(趙德容)은 1564(명종19)-1638(인조16)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윤(汝潤) 본관은 순창(淳昌)이다. 충신(忠信)인 조복(趙服)의 아들이다. 율곡(栗谷)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하였으며 율곡의 아낌을 받아 율곡의 조카사위가 되었다.김천도(金泉道) 찰방(察訪)을 거쳐 금화사(禁火司)의 별좌(別坐)를 지냈는데 1628년(인조6) 최여헌(崔汝獻)이 반란을 일으키니 종질 조기(趙圻)와 함께 참전하여 공을 세워 영사(寧社)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순창조씨들의 사당인 칠충사(七忠祠)에 배향되었다.[참고문헌. 괴산군지] 김천도(金泉道) - Daum 백과 김천도 조선시대 ..

충신(선무원종공신)형조참의순창조공덕공공적비( 忠臣(宣武原從功臣)刑曹參議淳昌趙公德恭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덕공(趙德我》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자는 사원 본관은 순창이다. 한성좌윤 조승의 둘째 아들이며 충신 조복의 종질이다. 괴산군 송평등에서 태어났으며 뒤에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로 옮겨 살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과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율곡의 문하에 있었고 유자(儒者)로 이름이 났다. 또한 마음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재덕과 지모(智謀)가 출중하고 용맹하여,일찍이 붓을 던지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웠다.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올라 선전관(宣뿐官)이 되었다가 호조정랑(戶불1E卽)을 지냈다. 1584년에 부친의 상을 당하여 집으로 ..

충절(불사이군)국자진사순창조공신공적비( 忠節(不事二君)國子進士淳昌趙公紳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신(趙神) 1324(고려충숙왕11)-1402(조선 태조 12)은 고려 말의 진사로서 호는 피세정(避世亭),본관은 순창이다. 문정공 조렴의 아들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건국되자 불사이군( 不事二君 )의 절의를 지켜 1392년 (태조 1) 괴산군 문광면 송평리에 내려와 오마산 밑에 피세정을 짓고 은둔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백이 • 숙제와 안진경의 충절을 찬미했다. 그의 묘소는 문광면 송평리에 있고 문광면 광덕리에 있는 칠충사에 배향되어 있다.

조반(趙肺) 1528(중종 23)- 1593(선조 26)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순창이다. 부사 조종(趙樹의 증손이며 조복(趙服)의 아우이다.임진왜란 때 그의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여러 곳에서 왜군과 싸웠고,충주싸움에서 그의 형이 전사하자 시신을 거두어 안장하였다. 벼슬은 사과에 이르렀고 공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宣武) 원종공신 에 추서(追敍)되었다. 묘소는 문광면 송평리에 있고 사당(칠충사)은 문광면 광덕리에 있다.【참고문헌】『괴산군지』 비석의 전면에는 충신선무공신공조참판순창조공반공적비(忠臣宣武功臣工曹參判淳昌趙公胖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문광면 광덕리 칠충사에 있는 순창인 조복의 공적비입니다. 후손들에 의하여 근간에 새로 세워졌습니다. 조복(趙服)1525(중종 20)~1592(선조 25)조선 중기 의 문신으로 자는 안중按例,본관은 순창이다. 부사(府使) 조종(趙滿)의 증손이다.어려서부터 영특하여 9세에는 이미 성인의 기국이 있었다. 군수를 역임하다가 사직하고 향리에서 한가히 지내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족에게 “내 비록 늙고 아무 관직이 없다하나 국난을 당하여 어찌 편안히 앉아 있겠느냐.”라고 이르고 방백여 윤선각을 만나 그 의 군막에서 토적을 도울것을 자원하였다. 그러나 윤선각은 괴산으로 돌아가 군수와 함께 하라고 하였다.이에 괴산으로 돌아와 군수 이우(李現)와 의논하여 우정침 • 윤우 • 조덕수 • 승장 운우 등과 함께 창의 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