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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17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황희석(黃希碩: ?∼1394)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고려 때 시중(侍中) 유중(裕中)의 후손으로 판서(判書) 천록(天祿)의 아들이다. 본래는 출가했다가 우왕 때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지냈다. 우왕 7년(1381) 왜구가 명량향(鳴梁鄕)에 침입하는 등 전라도가 어수선해지자 체찰사로 파견됐고,후에 단주상만호(端州上萬戶)를 지냈다.고려 우왕 14년(1388)에 요동정벌 때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다. 공양왕(恭讓王) 1년에는 회군공신(回軍功臣)에 책봉됐다.정몽주(鄭夢周)가 피살된 후 이성계의 명을 받아 정몽주 일파를 탄핵하는 임무를 수행하여 공양왕의 폐위와 조선 건국의 명분을 세웠다. 조선 태조 1년(1392) 8월 개국공..
증평 시가지를 벗어나 청안 방면으로 가다 증천교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청원군 초정 방면의 503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증평읍 남하1리 솔모루 마을 초입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비좁은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 남대산 동쪽 기슭의 남하리사지(南下里寺址..
ㆍ장용기부부정효각(張龍基夫婦旌孝閣) : 용강3리 547-1에 있는 정효각이다. 정효각은 효자 장용기와 그의 처 능성구씨(綾城具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부부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했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
ㆍ사곡리우물(射谷里-) : 사곡2리 ‘사청’에는 우물이 있다. 원래 이곳에는 우물이 없었다. 그래서 옆 ‘질벌’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뭄이 들라치면 물로 인한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가뭄이 심한 때에 한 노승이 이곳으로 시주를 왔다. 가뭄으로 인해 인심이 흉흉한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노승에게 정성껏 시주를 했다. 노승은 ‘가뭄이 심한데도, 또 부촌 같지 않은데도 어찌 이리도 인심이 후할까?’하며 의아해했다. 그러던 중 노승이 목이 말라 한 집에 들러 물 한 모금 마실 것을 부탁했다. 그 집의 안주인은 노승의 부탁에 미안해하며, “마침 집에 길어놓은 물이 없으니 여기 마루에 앉아 계시면 물을 길어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동이를 머리에 이고 성급히 나..
조봉대부(朝奉大夫)는 조선시대 문신 종4품 하계(下階)의 품계명이다.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종4품 상계는 조산대부(朝散大夫), 하계는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정하여져 그대로『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종4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경력·첨정·서윤·부응교·교감·제검·편수관·좌익선·우익선·부호군·군문파총(軍門把摠)·군수·동첨절제사·병마만호·수군만호 등이 있다. →문산계 동몽교관(童蒙敎官)은 조선조 초에 어린이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각 군현(郡縣)에 두었던 교관직. 처음에는 동몽훈도(童蒙訓導)라고 불렀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매년 사맹삭(四孟朔), 즉 1, 4, 7, 10월의 4회에 걸쳐 등용 시험을 보았으며 임기는 450일이었다. 고종29년(1892) 증평군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