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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23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진천 지역의 조선시대 건축물로는 조선 태조 때 건립된 진천향교가 있다. 대성전, 명륜당, 문묘인 동무와 서무로 이루어져 있다. 역대 현감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여러 차례 중수하였고, 1804년(순조 4) 지방의 유지 최흡이 사재를 들여 앞면 6칸 옆면 2칸의 풍화루를 세워 지금의 향교 모습을 갖추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선 태조 때 진천현 관아 남쪽 2리인 교성리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교육기관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재정비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풍화루는 1804년(순조 4) 지방의 유지 최흡이 사재를 들여 앞면 6칸 옆면 2칸의 풍화루를 세웠다. 향교를 방문한 날이 향교의 기와를 정비하..
‘진천 교성리 연화대좌’(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0 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좌와 관련된 가장 이른 기록으 로는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들 수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蓮座는 ‘진천읍의 남쪽 약 15정(약 1.6㎞) 봉 화산 남쪽 기슭에 있다. 하층만 존재하며 높이 4척(약 1.2m), 팔각형으로 만들어졌으며 상부 둘레 20척(약 6m)이고, 연화모양을 나타냈다. 꽃잎은 24잎이고 각 4 잎마다 위로 다시 1잎을 새겼으며 조각이 지극히 정교 하다.’고 하여 조각수법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진천 교성리 향토자료전시관 야외에 자리하고 있다. 대좌는 전체 높이 133㎝로 불상 대좌로 추정되며 지대 석을 비롯해 하·중·상대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대 석은 너비 216㎝, 현재 지면 노출..
진천 향토자료전시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월성리 석조여래입상입니다. 이 불상은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 산 2번지 광흥사 경내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이다. 본래 만승면 광혜원리 451번지 광혜원리 절터에 있었으나 1984년 지금의 광흥사로 이전되어 봉안된 것이다. 2020년 광흥사가 폐사가 되면서 이 곳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광혜원리 절터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grandculture.net) 광혜원리 절터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변천] 광혜원리 절터와 관련한 문헌 기록이 전하지 않아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도로 확장 공 jincheon.grandculture.net 광흥사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
화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화산리(畵山里)는 화암(畵岩)과 사산(斜山)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화암은 ‘빗길미’ 서남쪽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두물둔지’로 나오고, ‘화암’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사산’은 본래 ‘서남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빗길미’라고 불렀다. 빗길미는 ‘비스듬한 형상의 산’으로 해석되고 이에 대한 한자 지명이 사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軍資監正林秀蓂公懿蹟碑(군자감정임수명공의적비)라고 비석의 전면에 적혀 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임수명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80년 입니다. 임수명(林秀蓂)에 대하여는 한국학중앙회로 링크해 놓았습니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덕산면장 이계창의 선정비입니다. 이계창(李啓昌)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진천군 덕산면장(1919-1929재임)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계창은 1922년 덕산면 석장리 조광호가 사유지 22,070㎡를 희사해 옥동초등학교를 개교하였을 당시 면내 유지들로부터 1만여 원을 모금하였다. 이계창 선정비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덕산읍 행정복지센터 내에 위치하고 있다.방형대석 위에 가첨석[지붕돌]을 얹은 형태로 높이 128㎝, 두께 24㎝이다.이계창 선정비 앞면에는 ‘덕산면장 이공 계창 불망비 (德山面長李公啓昌不忘碑 )’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옆면에 서기 1929년 기사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덕산면장 퇴임과 함께 비석을 세운것으로 추정됩니다. ..
김긍현(金肯鉉)은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에서 출생한 유학자로, 1923년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4,000평의 부지를 기부하여 학교 설립에 공이 큰 인물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후학들의 백년대계를 위해 김긍현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세운 비라는 점에 의의가 있으며, 초평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1974년 동문들이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장학비 입니다. 학교안에 있던 장학비를 교문옆으로 옮겨 세워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