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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 문의문화재단지 내에 이전하여 복원해 놓은 조선시대 후기 가옥으로 원래 낭성면 관정리의 신방호씨가 살던 가옥을 옮겨와 지어졌다. 1994년 문화재단지로 옮겨졌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자형의 정면5칸 안채와 대문이 있는 ㄱ자형 광채가 초가지붕으로 남아있다. 안채 대청에 신주함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부농의 주택으로 일반 초가집보다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가구 구조나 세부적인 치목기법이 매우 정교한 편이다. 전형적인 충북지역 민가 건축양식의 가옥이다.
이 민가는 ‘기역(ㄱ)’자 형태의 전통 목조기와집으로,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서 김종철(金鍾喆) 씨가 살던 가옥을 이전, 복원한 것이다. 1995년에 문의문화재단지가 조성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2개의 동(棟)으로 이루어졌는데, 안채만 조선 후기에 지었고 광채는 새로 지었다. 가옥의 구조는 안채가 ‘기역(ㄱ)’자 형태의 목조와가로, 납도리 3량가 구조이다. 광채는 ‘일(一)’자 형태이며 지붕을 얇은 판석으로 덮은 돌기와집(石瓦家)으로 중부지방의 산골마을에 흔한 양식이다. 1982년에 조사한 ‘전국 취락 및 전통 가옥(민가) 조사 기록대장’에 따르면, 1950년대까지 이 집에 거주한 송동촌 씨의 3대 선친이 지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현..
미원면 수산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판리, 송교리, 원산리와 외삼곡리, 대판리, 수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곡과 원산의 이름을 따서 수산리라 하였다. 1987년 행정리동 분리로 너더리, 숫골, 스실을 수산1리로, 원미를 수산2리로 분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원면 수산리 원미마을에 있던 고인돌로 도로공사로 인하여 길가에 방치되어 있다가 문의문화재단지가 조성되면서 문의문화재 단지로 옮겨서 전시되고 있습니다.고인돌은 공사중 파괴 되었으며 현재는 뚜껑돌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노현리 고가는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 내에 조성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민가이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에서 이양훈(李讓勳) 씨가 살던 가옥으로 1993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였다. 원래는 강릉김씨(江陵金氏)인 김승지(金承旨)의 종가(宗家)였다고 한다.건물의 방향은 남향이며, 3개 동(棟)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의 구조는 안채가 ‘기역(ㄱ)’자 형태의 목조와가(木造瓦家)로 되어 있고, 광채와 사주문(四柱門), 측간(厠間)은 목조초가로 되어 있다. 광채는 ‘일(一)’자 형태로 안채의 전면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측간은 안채의 전면 왼쪽에, 사주문은 광채 옆에 배치되어 있다. 본래는 안채, 사랑채, 곳간, 축사 4채로 구성된 전통 기와집이었으나 지금은 ‘기역(ㄱ)’자형의 안채와 ..
이 유적은 대청댐 수몰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1977~1978년에 충북대학교 박물관팀이 발굴하였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2개(304×125×43~53cm, 278×50×40×~55cm)로 깨어져 있었는데(사진), 깨진 면이나 암질로 보아 같은 암석에서 깨어져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속칭 ‘윈치’라고 불리우던 원래의 덮개돌은 304~278×275×40~55cm의 큰 돌이었을 것으로 짐작되 이 덮개돌은 총 214개의 굼이 분포하고 있다. 굄돌은 판돌형식으로 덮개돌과 같은 암질이고, 유구는 긴 길이는 N-65°-W로 강의 흐름과 같은 방향을 취하고 있다. 아득이 고인돌은 당시의 지표를 47cm 파고 무덤방(214×106cm)을 만든 것으로 복원되었다. 바닥에 고운 흙과 그 위에 판돌을 깐 뒤, 다시 고운 흙을 깔..
문의문화재단지 유물전시관에 있는 영조대왕태실함입니다. 태실함은 온전한 모양입니다. 영조대왕의 태실비는 낭성면 무성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낭성면 무성리 영조대왕 태실(琅城面 武城里 英祖大王 胎室) (tistory.com) 낭성면 무성리 영조대왕 태실(琅城面 武城里 英祖大王 胎室) 문의문화재단지 영조대왕태함(文義文化財團地 英祖大王胎函) (tistory.com) 문의문화재단지 영조대왕태함(文義文化財團地 英祖大王胎函) 문의문화재 단지내 유물전시관 입구에 있는 영조대왕의 king6113.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