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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관찰사남공일우영세불망비( 觀察使南公一祐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엽연초생산조합 화단옆에 있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다시 세웠습니다.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하였으므로 단양 수안보 등 여러곳에서 비석을 볼수가 있습니다.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 뒤에 일우(一愚)로 개명. 자는 백경(伯敬). 태순(太淳)의 손자이며, 나주목사 병선(秉善)의 아들이다.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3년(고종 10) 성균관대사성,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1879년에는 그해의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그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충주·연풍·부여·청안 등지의 관청의 부실한 재정을 일제히 정비하였고, 조세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흉년으..
목사엄후찬청덕휼민선정비(牧使嚴侯纘淸德恤民善政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연도는 갑술(甲戌)년(1694년) 8월이다.익살스런 모양을 한 귀부가 받침돌을 하고 있으며 비갓에는 조금은 투박하지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았습니다. 승정원일기 352책 (탈초본 18책) 숙종 19년 4월 13일 병술 10/13 기사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善治守令 抄錄別單의 명단○ 善治守令抄錄別單,前牧使沈益相, 南原縣監沈極, 前郡守呂益齊, 海州牧使柳以井, 全州判官鄭有徵, 前府使鄭悏, 豐德府使南尙薰[南尙熏], 司僕僉正朴重圭, 前府使趙持恒, 恩津縣監朴重徽, 前縣監具文洙, 刑曹正郞申瓁, 善山府使鄭是先, 尙州牧使李恒, 前都事南彦昌, 漢城庶尹鄭重昌, 丹陽郡守李渙[李澳], 杆城郡守李寅熽, 定平府使李璜珪, 忠州牧使嚴纘, 永川郡守張瑱..
목사이후채청덕애민영세불망비( 牧使李侯采淸德愛民永世不忘碑 )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의 건립시기를 보면 가경(嘉慶)7년(1802년) 임술(壬戌)년 가을이다. 달천대교옆에 있던 것을 충주시에서 정비하면서 달천동과 단월근처에 산재되어 있던 비석들을 이 곳으로 옮겨 개립하였다.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
임직현 청덕비는 단월동 상단마을 시내버스 정류장옆에 자리하고 있던것을 이 곳으로 옮겨 다시 세웠습니다. 앞면의 비제는 7×7㎝ 크기의 해서체로, ‘남변면장임직현청덕비(南邊面長林稷鉉淸德碑)’라 음기하였다. 뒷면에는 ‘무신 십일월 일 각동립(戊申十一月日各洞立)’이라 음기하였다.서기년도로는 1908년입니다. 임직현(林稷鉉)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1914년에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임직현 청덕비가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1896~1908년 사이에 면장을 역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호흥학회보』 제7호의 회중 기사에 의하면, 임직현은 충주군 기호흥학회의 평의원 24명 중의 1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호흥학회가 애국계몽운동 단체로 ..
한독의약박물관에 전시중에 있습니다.주전자의 몸통모양이 참외모양으로 세로로 골이 파여져 있는 몸통과 뚜껑을 가진 손잡이 주전자입니다. 뚜껑은 8 곳에 골이 파여져 있으며 그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습니다. 주전자는 손잡이가 달린 형태로서 손잡이의 상단에 고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각 골이 파인 몸통의 부분마다 꽃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암산은 청주의 진산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찰이 있으며 또한 절터도 많이 존재합니다.명암동 명암약수터 뒷길로 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청주곽씨들의 선조사당인 상당사를 볼수 있습니다.상당사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연암반 지대를 만나게 되며 마애불은 그 곳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두 구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두손에 홀을 쥔 동자승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마애불이 쌍둥이 마냥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암반을 깍아서 조성해 놓았습니다.마애불을 바라보며 오른쪽 마애불은 코가 훼손되어 있습니다. 마애불위로는 바위를 깍아서 호랑이를 형상화한 조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발톱과 함께 이빨등은 호랑이를 나타내지만 머리부분은 조금 정교함이 부족한 듯 합니다. 비스듬한 바위 위에 조각해 놓아서 사진촬영등을 할때는 조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