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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소이면 비산리 동네에서 미타사쪽으로 길을 재촉하다보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두기의 비석을 볼수 있습니다.동시대에 충주목사를 지낸 엄찬과 이국헌의 비석입니다.예전에는 이 길이 교통의 요충지로서 마굿간도 있었고 사람이 쉬어갈수 있는 주막도 있었다고 합니다.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니 고을수령등의 선정비도 있었을 거구요 이 비석이 서있는 거리다 하여 지명마저도 비선거리 입니다.비석은 크기에 비해 조금은 조각솜씨가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비산리에 있는 조선조 충주목사를 지낸 엄찬의 선정비입니다. 옆에는 동 시대의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비석입니다.두 비석의 모습으로 보아 동 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비두에는 태극문양등으로 모습을 내었지만 비석의 크기에 비해 글씨등은 조금은 서툰솜씨 입니다.이 비석들로 인하여 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에는 수주리, 월은리, 문박리, 팔봉리가 있었다. 이 중 문박과 수주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문주리 (文周里)라는 명칭이 처음 만들어졌다. 문주리에 대한 기록은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나온다. 당시 유등면은 주음성리, 산정리, 팔봉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팔봉리가 현재의 문주리이다.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현재 문주리의 행정리를 이루는 팔봉, 수주, 월은이 나온다.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팔봉, 수주, 문박, 월은이 나온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이들 네 개 마을이 합쳐져 문주리가 처음 생겨났다. 그리고 유등면이 이안면과 합쳐지면서 문주리가 이류면[현 대소원면]에..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입니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과 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습니다. 강음인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오랑캐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유등면장을 지낸 이순교의 송덕을 기리는 비입니다.1914년 충주군의 유등면과 이안면이 통합되어 이류면이 되기 직전인 1913년 유등면장을 역임하면서 면민을 편안케 하고구휼한 이순교(李淳敎)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승백이 삼거리에 건립하였다가 1992년 7월에 매산경로당이 건립되면서 송덕비를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국도 3호선을 따라 달천대교를 건너 좌회전을 한 후 지방도 525호선을 이용하여 매현초등학교 앞까지 직진하면,매산경로당이 보이고 매산마을 자랑비가 서있는데 그 옆에 이순교 송덕비가 자리하고 있다.비좌직수의 형태로 화강암 비신은 34.5×15×106㎝의 크기이고, 대좌는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74.5×50×23㎝이다. 대좌는 약 10㎝ 가..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기의 영세불망비.신석기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정조 연간에 잠깐 보이고 있어 정조 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건립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다년간 수리(首吏)로 민정을 자상하게 시찰하였다는 데서 공덕을 짐작할 수 있다.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정문 옆의 야산 자락에 위치하였다가,2008년 단월동 488-1번지에 충주 엽연초생산조합 건물이 신축되면서 산자락의 영세불망비 3기를 조합 운동장 서쪽에 조그만 화단을 조성하여 세워놓았었다. 그 후 23년 12월에 단월동과 달천동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 모아 지금의 자리인 단월대교옆에 세워 놓았습니다.비좌원수 형태이며, 규모가 작은 화강암 비로..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유장혁의 영세불망비.원래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정문 옆의 야산 자락에 위치하였으나, 2008년 단월동 488-1번지에 충주 엽연초생산조합 건물이 신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놓았다. 그 후 달천동과 단월동에 흩어진 비석을 한군데 모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비좌원수의 형태로 비신은 53×16×122㎝ 크기의 대리석 비이다. 대석은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다.비제는 8×8㎝ 크기의 해서체로 ‘가선대부유장혁영세불망비(嘉善大夫劉章赫永世不忘碑)’라 음기되었으며,비제 양옆으로 2행씩 본문이 3×3㎝ 크기로 ‘누거리수세탐민정일경뢰력중구동성(屡居吏首細探民情一境賴力衆口同聲)”이라 음기되어 있다. 유장혁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자세한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