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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일제강점기 시절 호암지를 대대적으로 축조할 때 여러가지 사고등으로 죽은 일본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으로 전해 집니다. 특히나 일본인 잠수부가 공사를 할 때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아마 그 일본인을 기리기 위한 탑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암석을 세워 위령탑(慰靈塔)이란 글씨를 각자 하여 놓았습니다. 1937년 5월23일 자와 25일자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충주수리조합 호암제에서 통관(桶管) 파손 수리공사를 하던 인천 조일조(朝日組) 잠수부 고하만치(古賀萬治·44)씨가 5월 17일 익사하자 닷새 만에 한국인 제자 김성손(27) 씨가 높은 수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신을 건져냈다. 충주수리조합은 조합장과 충주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낸 뒤 고하만치씨의 매부인..
정태현이 충북관찰사를 지낼 당시 아들인 의현과 함께 이 곳 화양동을 방문하여 금사담가 암벽에 이름을 각자하였습니다. 관찰사정태현자의현(觀察使鄭泰鉉子谊賢) 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정태현은 대한제국기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료입니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칠(汝七).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縣監) 정재범(鄭在範)이며,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 임병조(林炳祖)의 딸이다. 백부인 감역(監役) 정재행(鄭在行)에게 입양되었다. 1883년(고종 20) 천거로 동몽교관(童夢敎官)이 되고, 1886년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가 되었다. 1894년 동학난이 일어나자 두동(杜洞)으로 들어가 살면서 어려운 친척들에게 토지를 떼어주고 동리의 어려운 자들을 모두 도와주니 목비(木碑)와 석비(石..
괴산군 청천면 화양계곡 금사담가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이름각자입니다. 안효진,정시원,김영훈등이 같이 이 곳 계곡을 방문하였다가 각자한것 입니다.安孝鎭 鄭時元 金永勳이라고 힘있는 필체로 새겨 놓았습니다.각자된 인물들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잘 알수는 없습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가장 근접한 상황으로 논문에서 이 곳 화양동과 연관이 있는 인물의 흔적을 찾을수 있었습니다.바위에 암각된 안효진과 동일인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관련성이 가장 높은것 같습니다. 아래내용의 지산 안효진이 맞는다면 이 각자는 일제강점기쯤에 각자된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며 일제의 통치와 서구 문물의 유입 등 국내외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유교의 위상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유학을 고수했던 당시 유림들은 심각..
충효절의(忠孝節義)는 우암송시열의 학맥 인물들이 '한국 최고의 구곡(九曲) 화양구곡' 암벽에 새겨놓았다. 충(忠)은 국가와 사회의 공존공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효경'에 "효(孝)는 자신을 잘 수양하고 인륜적 도리를 실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리고 부모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절개는 군신 친구 남녀 부부간 등 인간관계 때 지켜야하는 정렬(貞烈)과 절제이다. 맹자는 "의리는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이다"라고 했으며 '호연지기'는 의(義)가 모여 생긴다고 했습니다. 화양구곡의 제4곡인 금사담 주위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글씨를 알수 있습니다. 금사담과 함께 첨성대 그리고 파천가에는 많은 암각자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위치한 화양구곡은 많은 암각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시열과 많은 연관이 있으며 화양구곡은 곧 송시열이라고 생각해도 무난합니다. 당시의 숭명배청사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곳입니다.특이나 창오군단 무이산공이라는 각자는 암서재 주위에 있는 암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월의 풍상과 함께 이끼등으로 인하여 관심을 가지고 보셔야 보실수 있습니다.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은 명의 황제가 살던 시대의 구름이 끊기고 주자(朱子)가 살던 무이산은 비어 있다는 뜻으로 주자학의 본산인 명이 사라지고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조선이 명을 계승해야 하는 당위성과 화양 9곡으로써 주자의 무이 9곡을 대신하려는 의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송시열의 철저한 숭명배청사상을 엿볼수 있습니다.그 밖에도 ..
청천면 화양구곡의 제 4곡인 금사담가에 있는 암벽에 각자된 어필봉안사 김종수의 각자입니다. 만동묘편액 어필봉안사신김종수 숭정삼병신구월삼삽일( 萬東廟扁額 御筆奉安使臣金鍾秀 崇禎三丙申九月三十日 )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숭정3병신( 崇禎三丙申)년은 1776년이며 정조즉위년입니다. 만동묘(萬東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만동묘(萬東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김종수(1728-1799)는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정부(定夫), 호는 진솔(眞率) 또는 몽오(夢梧). 서울 출신. 우의정 김구(金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김희로(金希魯)이고, 아버지는 시직(侍稷) 김치만(金致萬)이며, 어머니는 홍석보(洪錫輔)의 딸이다. 부인은 교리(校理) 윤득경(尹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