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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곶가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이서李舒 이지형李趾亨의 이름과 함께 조병현趙秉鉉,조구하趙龜夏,조봉하趙鳳夏,박사호朴思浩,이택영李宅永,홍원석洪元錫 김희金憙 등의 이름도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서(李舒:1332~1410) 조선 전기에, 사헌부대사헌, 문하시랑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양백(陽伯) 또는 맹양(孟陽), 호는 당옹(戇翁)·송강(松岡). 고려 고종 때 시중(侍中)을 지낸 이연수(李延壽)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연경궁제학(延慶宮提學) 이기종(李起宗)이다. 홍주를 관향으로 한 것은 아버지 때부터이다.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군부좌랑(軍簿佐郎)에 올랐으나, 세상이 어지럽고 정치가 문란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사지에서 석굴발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발견된 불신입니다. 불신의 하체와 불두는 파손되어 불신만 있습니다. 불신에는 화려한 목걸이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손에는 약합이 들려있어 약사불로 추정이 됩니다.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grandculture.net)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변천]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 chungju.grandculture.net
청천면 창리에 위치한 장기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돌입니다.지금도 이 바위가 자리한 곳의 지명은 장기바위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바위위에는 장기를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장기판 비슷한 모양이 가로세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호울타리도 잘 정리되어 있었고 안내표지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은 관리가 부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차량통행이 빈번한 이차선 도로가에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난 듯 합니다. 예전부터 바위에 손상을 가하거나 하면 화를 입는다고 전해지며 마을사람들은 바위를 신성시 여기며 마을의 수호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 석조 보살좌상. 성불사 석불좌상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의 성불사에 있던 불상으로 현재 충주박물관 야외전시실로 이전, 전시되고 있다. 불정면은 행정구역상 괴산군에 속하지만 옛 충주에 속했던 지역이다. 높이 98㎝인 성불사 석불좌상은 전면에 덧칠을 하고 손목 이하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다. 머리는 큰 편으로 원통형 보관을 썼으며 이목구비는 마멸이 심하여 어렴풋이 보일 뿐이지만, 코는 작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다. 어깨는 당당하고 목에 장신구를 표현하고 있다.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도식화된 평행 사선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이양호(李亮浩)[1805~1823]의 부인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각.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의 효자 이양호의 부인인 남원윤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1년(철종 2)에 세운 정려각이다. 청주시내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향으로 가다 지북교차로에서 좌측의 목련공원길로 약 2㎞ 가량 가면 오른쪽에 경주이씨 국당공파 집성촌인 백운동 마을이 있는데, 마을 입구 왼쪽의 동구나무 옆에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약 70㎝ 가량의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모로단청을 하였다. 주춧돌의 하단부는 자연석을 사각으로 다듬었고 윗부분은 팔각 고주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주춧돌..
문바위에 대한 유래. 고려시대에 이곳에 문바우(바위)가 있어 문바우고개라 불리기 시작한 이 고개는 부근에 목화밭에서 목화따던 처녀를 스님이 데리고 문바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인가문(人家門)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구렁을 인가문골이라고도 했다. 서쪽에 절이 있어 많은 스님이 왕래하였으며 부근에 절에 대한 전설이 많다. 서기 1612년(광해 4년) 해평윤공 (휘 성임)께서 광문병과에 합격한 후 한림삼사를 역임한 뒤 보덕공을 제수받고 낙향 중 인가문 고개를 넘다 목이 말라 사경을 헤메던중 마침 조그마한 샘물이 있어 기갈을 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여 그 후 이 고개를 윤갈미(尹渴迷) 또는 윤갈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문바위는 서기 1970년 도로공사로 매몰되었던 것을 2000년 초에 동민이 합심..